[뉴스콤 장태민 기자] 구글이 AI 모델 운영 시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배까지 절감할 수 있는 데이터 압축 알고리즘 '터보퀀트'를 공개한 뒤 메모리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메모리 효율이 극대화되면 기업들의 신규 메모리 구매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면서 한국 대표주들의 주가도 나가 떨어졌다.
구글 리서치가 AI 메모리 압축 기술인 터보퀀트(TurboQuant)를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날짜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3월 24일이었다.
미국의 대표 메모리 종목 마이크론의 주가는 발표 전인 19일부터 급락했다.
■ 마이크론, 샌디스크 최근 무서운 조정
마이크론 주가는 19일부터 갑자기 급락했다.
마이크론 주가는 19일 3.78% 급락하더니 6거래일 연속으로 주가를 낮췄다.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6일 급락한 것을 확인한 뒤 간밤엔 6.97%나 추가 하락했다.
마이크론 주가는 6거래일 동안 23%나 폭락했다.
구글 리서치는 터보퀀트를 현지시간 24일 공개했으며, 한국에서는 25일~26일 사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시작했다.
미국에선 메모리 주가가 24일 이전부터 급락했던 게 특징이다.
샌디스크 주가는 20일부터 폭락했다. 샌드스크는 20일 8% 넘게 급락하더니 26일엔 11.02% 폭락했다.
샌디스크는 단 5거래일만에 22% 폭락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마이크론 등 반도체 주가의 폭락을 확인한 뒤 국내에서도 대거 메모리 주식을 팔았다"면서 "개인이 받쳤으나 전날 코스피에서 외국인이 3조 넘게 순매도하자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이란 전쟁 이슈 외에도 구글의 터보퀀트도 시장의 새로운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AI 기술 효율성 증가 속 메모리 수요 둔화 우려가 부각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KV 캐시(Key-Value Cache)는 생성형 AI(LLM, 거대언어모델)가 답변을 생성할 때 이미 계산했던 내용을 기억해뒀다가 재사용하는 일종의 '단기 메모리 저장소'다. 챗GPT 같은 AI가 한 글자씩 답변을 생성할 때 매번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지 않도록 효율을 높여주는 핵심 기술이다.
구글의 '터보퀀트'는 바로 이 KV 캐시의 크기를 6배나 압축해주는 기술이다. 시장은 캐시 용량을 6배나 줄일 수 있다면, 기업들이 HBM이나 DRAM을 예전 만큼 많이 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보고 메모리 종목들을 팔았다.
아무튼 메모리 반도체가 주식시장을 이끄는 한국으로선 미-이란 전쟁 우려에다 '구글 기술의 한국 역습'까지 걱정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 메모리 투자자들, '딥시크 식 충격'으로 끝나길 기대
하지만 구글 터보퀀트의 등장이 구조적인 메모리 수요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도 많다.
우선 터보퀀트는 아직까지 논문 수준으로 실제 적용까지는 시차가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적극적으로 이 현상을 해석하는 사람은 터보퀀트 때문에 메모리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승훈 연구원은 27일 "터보 퀀트로 인해 AI 운영 비용 감소 및 이용 효율 증가 → 다수의 후발 기업 AI 생태계로 진입 → AI 시장 파이 증가 및 전체 메모리 총수요 증가(제본스의 역설)라는 시나리오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작년 1월 딥시크 사태 때에도 초기 시장 반응은 대체로 쇼크를 보인 이후 중장기적으로 재차 랠리를 펼핀 바 있다. 결국 이번 터보퀀트발 메모리 주가 급락은 전쟁 등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지난 1년 간 급등세를 펼쳤던 반도체주의 단기적 차익실현 성격이 강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딥시크는 중국에서 개발돼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준 생성형 AI였다. 딥스크가 AI 가속기 수요를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에 엔비디아 주가는 단기간에 폭락한 바 있다. 2025년 1월 27일 엔비디아는 단 하루 만에 약 17% 폭락했다.
딥시크가 공개한 'R1' 모델이 엔비디아의 최신 칩 없이도 기존 칩을 활용해 훨씬 적은 비용($600만 미만)으로 서구권 모델과 대등한 성능을 냈다는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2025년 내내 상승세를 이어가며 10월에는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하는 등 '딥시크 쇼크'를 옛날 일로 만들었다.
아울러 최근 미국 메모리 종목들의 폭락은 그간 주가가 너무 뛰었던 데 따른 반작용 성격이 컸기 때문에 과잉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1년 수익률은 마이크론 +289%, 샌디스크 +1,040%, 웨스턴디지털 +552%에 달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조정의 핑계라는 것이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비중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번 사태가 비중 확대의 기회라는 주장도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7일 "구글 터보퀀트의 표면적 목적은 AI 모델 경량화를 통한 비용 절감과 전력 효율의 개선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전략적 의도는 전체 AI 추론 수요의 구조적 확대에 있다"면서 "터보퀀트와 같은 경량화 기술이 더 많은 사용자를 AI 환경으로 유입시켜 AI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1990년대 인터넷 사례에서도 효율 혁신은 오히려 수요를 폭증시킨다는 걸 알 수 있다. 1990년대 인터넷 도입 초기에는 이메일, 디지털 문화 확산으로 종이 사용량 감소가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1995~2007년 12년간 종이 사용량이 급증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터보퀀트를 비롯한 저비용 AI 기술은 AI 사용장벽을 낮추고 전체 수요를 폭발적으로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는 연산량 증가와 메모리 탑재량 확대로 직결된다. AI 생태계 확장 경쟁의 최대 수혜는 메모리반도체 업체가 될 것"이라며 우려와 정반대 되는 주장을 펼쳤다.
■ 제본스의 역설...터보퀀트 위협에도 '메모리' 믿어도 될까
제본스의 역설(Jevons' Paradox)은 기술 발전으로 자원 이용 효율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원의 전체 소비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은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가 석탄 소비 양상을 관찰하며 만든 개념이다.
당시 제임스 와트가 기존보다 훨씬 적은 양의 석탄으로도 작동하는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제 석탄을 덜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햇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석탄 효율이 좋아져서 증기기관을 돌리는 비용이 저렴해지자, 이전에는 비싸서 못 쓰던 공장과 철도, 선박 등이 증기기관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제본스는 1865년 '석탄 문제'(The Coal Question)라는 책을 집필해 사람들의 이성을 깨웠다.
당시 개별 엔진이 쓰는 석탄은 줄었지만 증기기관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의 석탄 소비량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최근 터보퀀트의 위협으로 미국, 한국 메모리 주가가 폭락하자 주식시장에선 '제본스의 역설'을 빌려 방어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즉 터보퀀트(메모리 효율화) → AI 서비스 저렴화 → AI 이용 급증 → 메모리 반도체 전체 수요 증가라는 논리를 만들면서 지금의 주가 급락을 저가매수의 기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터보퀀트가 메모리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악재일 수 밖에 없어, 시장이 커진다는 '미래 파이 효과'만으로 악재를 호재로 평가하기엔 찜찜하다는 지적도 보인다.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터보퀀트 사태를 단순히 찻잔 속의 태풍, 혹은 제본스의 역설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 애매한 부분도 있다"면서 "아무튼 이번 사태는 그간 메모리 반도체 낙관론에 취해 있던 사람들을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