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동반 약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주요국 국채 수익률을 끌어올리며, 그동안 시장을 지배하던 금리인하 기대를 빠르게 되돌리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국 국채 금리는 전 구간에서 큰 폭 상승했다. 코스콤 CHECK(3924)에 따르면,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4.38%대로 올라서며 연중 고점 수준에 근접했고, 2년물은 3.90%대로 상승해 통화정책 기대 변화를 반영했다. 장기물인 30년물 역시 4.94%대까지 오르며 5%선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익률곡선은 장기물 중심으로 가팔라지는 ‘베어 스티프닝’ 양상이 나타났다.
이 같은 금리 급등의 핵심 배경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확대됐고, 북해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를 웃도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유가 상승이 단기적인 충격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채권 매도세가 강화됐다.
금리 상승은 단순한 시장 반응을 넘어 통화정책 기대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불과 수주 전만 해도 우세했던 금리 인하 전망은 빠르게 약화됐고, 일부 구간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되기 시작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 대응 여지가 좁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뚜렷하다. 연준 내부에서도 유가발 물가 상승 위험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며 정책 스탠스가 보다 신중해지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연내 금리 동결 기대가 강화되는 한편, 금리 인상 가능성도 일정 부분 시장에 반영되는 등 정책 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최근 인터뷰에서 “유가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며 기존의 금리 인하 입장에서 신중론으로 선회했다. 대표적인 비둘기파 인사의 입장 변화는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유럽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3%를 넘어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고, 영국 10년물 길트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유럽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하면서 채권시장 전반에 매도 압력이 확산된 결과다.
주요 중앙은행들의 태도 역시 점차 매파적으로 기울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물가 전망을 상향 조정하며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뒀고, 영란은행(BOE) 역시 금리 인하 시사 문구를 삭제하며 정책 방향을 사실상 전환했다. 에너지 가격 충격이 지속될 경우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물가 대응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이 변화하면서 채권시장에서는 ‘인하 사이클 지연’ 가능성이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유가가 고점 수준을 유지할 경우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어려워질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국내 시장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간 정책 균형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리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경우 국내 시장금리도 상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중동 전쟁은 단순한 지정학적 이벤트를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 구조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을 매개로 한 인플레이션 재확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채권시장은 물론 통화정책 경로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전쟁의 향방과 유가 흐름이 글로벌 금리 경로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당분간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