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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사투

장태민 기자

기사입력 : 2024-08-30 14:22

[뉴스콤 장태민 기자] 최근 서울 이대 목동병원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의 절절한 글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남궁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답답현 의료 현실, 그리고 자신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적었다.

손이 모자라 위급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는 시스템 위기, 그리고 체력의 한계 속에서 버터야 하는 현실을 적은 글은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현장의 의료진 사이에 한국 의료 시스템 붕괴에 대한 우려가 절절히 느껴졌다.

하지만 정부는 비상 체제를 통해 더 버티면 '의료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전히 이번 개혁을 통해 국민들이 더 좋은 의료 환경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분투와 '다치면 안 되는 나라'가 된 한국

남궁 교수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 교통사고 피해 환자의 사례를 들었다.

젊은 환자의 팔다리가 터져나갔고 혈압이 떨어진다는 급박한 사연을 들었지만, 이 의사는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중증외상이고 검사하면 추가 손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은 환자였지만 자기가 몸 담고 있는 병원은 올해 2월부터 정형외과에서 응급수술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남궁 교수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었고 배후과 진료도 어려웠다고 했다. 다른 병원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환자 쪽에서 1시간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안타깝게도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병원에서 거절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남궁 교수는 현장의 의사로서 절망적인 현실을 이렇게 적었다.

"현재 수도권에서 팔과 다리가 부서져 뼈가 튀어나온 사람은 갈 곳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팔과 다리가 터지면 안 되는 곳이다."

남궁 교수는 그러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상황실에 근무하는 교수님이 직접 내게 통화를 요청했다. 내일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우리 병원에서 받아서 살려달라고 했다. 내 생각도 비슷했다. 다들 거절했다면 권역센터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어떻게든 목숨이라도 붙여야 했다. 수용했더니 환자는 과연 뼈와 살이 마구 튀어나와 있었다. 밤새 근육 더미에서 범퍼 조각을 건져내며 그를 살렸다. 아침에 그는 수술을 받으러 다른 병원에 갔다. 아주 운 좋게 언론에는 실리지 않았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많은 한국민들이 '돈만 밝히는 존재'라고 단정해버린 많은 의사들은 여전히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실력이 최상위권인 한국의 뛰어난 의사들은 현재 국민들에게 안타까운 당부를 하고 있다.

'제발 큰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지 말아 달라'

현재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더 살 수 있는 환자들에게 변고가 발생하는 중이라는 안타까운 얘기들도 계속 들려오는 중이다.

■ 쟁점은 논의하기 싫었던 정부, 전공의는 돌아올 수 없었다

필자는 전문가를 배제한 채 실행되는 소위 '개혁'이 성공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

한국 의료 개혁은 해답은 누구보다도 현장을 잘 아는 의료진에게 있었다. 하지만 주체가 돼야 할 사람들은 배제된 채 개혁이 진행돼 왔다.

여전히 정부는 '의사 집단이 제대로 된 안도 내놓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전공의 등 의사들은 이용 당하거나 들러리를 서기 싫었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쟁점인 '의대 증원'은 못 건드린다고 못 박아 놓고 협의를 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살리는 데 의사들이 동참해 달라고 끝없이 호소했다. 하지만 의사집단,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예상대로 이제 지역의료, 필수의료는 더욱 꺼리는 영역이 되고 있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문제는 못 건드리고 '다른 문제'만 협의하자고 하니 당사자가 응하겠는가.

정부가 의사 집단과 많은 협의를 했다고 하지만 의사들은 병원장, 대학 총장, 현장을 모르는 이른바 '의료 전문가'나 의료 사회과학자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에 대한 믿음은 꺾이지 않는다.

대통령도 '이번에 잘만 넘기면' 의료 시스템이 개혁이 된다고 한다.

■ 대통령의 '의료개혁' 자신감이 두렵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 답변을 듣고 필자는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대통령은 "비상 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궁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외롭게 남아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원활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듣기 좋은 말, 그러나 성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공자왈, 맹자왈'에 가까운 얘기들을 했다.

대통령은 "의료 개혁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지 관계없이 차별받지 않고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공정하게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은 현재의 시스템을 밀어붙이면 '비용만 많이 들고 돈이 있는 사람만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의심한다. 대통령과 정반대로 보는 것이다.

대통령은 "답은 현장에 있고 디테일에 있다. 정부는 헌신적 의료진과 함께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내겠다"고 했다.

맞다. 답은 현장에 있고 디테일에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의료 개혁에 '현장도 없고 디테일도 없다'는 게 진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의대 증원이 당장 의료 현실을 개선 시킬 수 없다는 점은 정부도 안다. 하지만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필수 의료, 중증 의료, 수술 등 과거 기피하던 부분들이 의사들에게 더 인기 있는 과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문제는 우리 정부 남은 기간 동안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의료인을 더 양성하는 문제는 최소 10년에서 15년이 걸리는 일"면서 "지금 해도 2035년 기준으로 할 때 1만5000명 부족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필수 의료를 담당하던 의사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은 이미 갈가리 찢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최소 10년, 15년 이후를 보면서 '여유 있게' 정책을 할 때가 아니다. 당장의 시스템 붕괴를 막아야 할 때다.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위험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금의 비상의료체계에 대해 '꽤나 여유 있는' 평가를 하고 있다. 남궁 교수같은 사람을 만나 대화라도 해봤는지 의심이 든다.

현장의 필수과 의사들은 한국의료 시스템이 힘겨운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보지만, 대통령의 발언엔 여유가 느껴졌다.

대통령은 "비상 진료체계가 의사들이 다 돌아올 때까지 운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개혁과정을 통해서 1차, 2차, 3차 병원 간 기능적 역할 분담이 아주 건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전문가 무시하고 다수결로 정책 밀어붙일 때 일어나는 일은...'파국'

필자는 그간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연초 정부가 개혁을 시도할 때 필연적으로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다만 필자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간만에 옳은 일 한다'고 박수를 쳤고 '돈만 아는' 의사들을 조롱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 결과 세계인이 부러워하던 한국 의료 시스템은 망가지는 중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현장과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남궁 교수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상위 기관일수록 인력이 이탈해서 응급실이 문을 닫고 있다. 그러면 환자는 다른 병원에 쏟아지고 다시 그 병원도 문을 닫는다. 며칠 전부터 우리 병원도 밤 근무 결원이 생겼다. 그나마 막아내고 있던 인력이 이탈해서 밤중에 열두 시간 동안 권역 센터가 문을 닫는다. 그러면 환자가 갈 곳이 없고 간호나 기타 인력도 출근하지 못한다. 의사 한 명이 없어서 환자는 병원을 잃고 의료진은 직장을 잃는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상 진료체계를 한동안 운영하는 게 가능하고 병원간 역할 분담도 잘 된다고 보고 있다.

현장에서 위급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은 이제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남궁 교수도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다른 사람의 몸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그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필자는 남궁 교수가 자신의 몸부터 챙기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올해 초에 디스크가 터졌고 저번 달부터는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인다. 초점이 잘 안 맞아 어지럽고 목 뒤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 팔이 수시로 저리다.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일 같지만 하고 있다. 한 달도 못 버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육 개월이 넘었다. 이 붕괴는 확정됐다. 일말의 방법이 없다."

많은 의사들, 그리고 의사들의 판단이 맞다고 봤던 사람들은 제발 정부가 '반년'이란 시간과 '수조원의 국민의 돈'을 날리는 수준에서 이 일을 그만두길 바랬다. 그래서 9월이 시작되기 전에 이 사태가 원점으로 되돌려지길 원했다.

이제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들어서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이 아부꾼과 내시들에게 둘러쌓여 사태를 오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대통령이 강조한 '현장과 디테일' 그 자체인 남궁 교수의 말 대로 이제 파국이 다가온 것 같아 두렵다.

(장태민 칼럼)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사투


(장태민 칼럼)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사투


자료: 최근 남궁인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자료: 최근 남궁인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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