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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의대증원 '산수' 꼬집은 서울공대 교수

장태민 기자

기사입력 : 2024-06-17 14:22

출처: 서울대학교
출처: 서울대학교
[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14일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서울대 공대 교수가 '의대 정원 감축 논의'를 주장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초저출산, AI기술, 국가경쟁력의 관점에서 본 의대 증원'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성 교수는 의대 증원은 어리섞은 정책 실패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올해 2월부터 갑자기 의대 증원 2천명을 내세워 의료계와 갈등을 빚은 가운데 서울 공대의 노(老) 교수는 사실상 정부의 '산수가 틀렸다'고 비판했다.

성원용 교수, 정부의 주먹구구 계산 비판

성 교수는 정부의 '의사 2.2만명 부족' 주장은 계산 오류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주장은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무시한 데다 정부가 유리한 통계(중위 출산율)만 가져다 쓴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출산율 가정'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최근까지 통계청의 출산율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지금 한국은 0.6명대 출산율을 바라보는 지경까지 몰려 있다.

하지만 정부는 2천명 증원의 근거로 유리한 수치가 갖다 썼다는 게 성 교수의 비판이다.

그는 "통계청 출산율(저위 0.82, 중위 1.08, 고위 1.34)은 낙관적인 예측임에도 의사 증원 연구에서는 중위 출산율 통계를 인용해 의사가 모자란다고 예측했다"면서 "저위와 중위 출산율은 2050년 기준으로 500만명 가량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500만명이라는 수치는 엄청난 차이다.

성 교수는 "저위 추계시 의료 수요는 9%가 감소해 의사 부족 숫자가 그만큼 줄어든다. 학력 수준별 의료수요 요소까지 고려하면 추가로 6.5%가 줄어든다. 결국 의사수 부족은 미미하다는 게 결론"이라며 정부가 통계 거짓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돼 통계청 저위 출산율(0.82)마저 크게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타 통계들도 '2천명 증원'에 맞추기 위해 자의적으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특히 OECD 통계에서 '명목' 의사수만을 활용해 상황을 호도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행정 관료들이 인구 1천명당 의사수 통계(한국 2.7명, OECD 평균 3.5명)를 들어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전문의를 만나기 가장 쉬운 나라"라며 "예약 안하고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나라이며, 의료가 취약한 곳이라도 1시간이면 가까운 도시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대 인원을 증원하지 않더라도 2050년이면 의사 잉여 시대가 온다"고 분석했다.

사실 한국인들은 의사들의 자발적이고 수준 높은 노동으로 인해 세계 어느나라보다 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왔다.

한국인들은 그간 일처리 속도가 뛰어난 의사들 덕분에 상대적으로 싼 값에 의료 복지를 누려왔다. 하지만 이제 정부가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의료 개혁(!)으로 이런 시대도 저물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공학자는 정부의 '독단'을 비판하면서, 인위적으로 의대생을 늘리더라도 정부가 말한 '긍정적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무조건 늘려서 양산된 의료인은 국민 피해로 돌아올 겁니다. 의대 증원이 아니라 감원 시점을 연구할 때입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30∼40년 뒤 잉여 상황이 벌어지는 시점에 건강보험과 의료산업이 파탄나고 각자도생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험한 고집과 독단이 한국 의료시스템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우려했다.

"의대 정원을 정부가 독단으로 정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북핵이 아니라 대통령입니다."

■ 건보료 통한 '복지' 강화...한국경제 큰 위험 서서히 다가오는 중

저출산은 한국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생산인구는 줄고 노인인구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노인 복지'를 강화하려고 하면, 한국경제는 버티기 쉽지 않은 게 작금의 인구 흐름이다.

힌국은 생산인구 감소로 건강보험료 수입은 줄고 노인인구 증가로 지출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억지로' 지금 의대생 수를 대폭 늘려도 이들이 필수 의료 분야에서 전문의 역할을 하는데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의료 재정이 견디기도 어려워진다.

그나마 '뜻이 있었던' 전공의나 의대생들도 정부의 상전노릇 덕분에 필수분야는 더 택하기 어려워졌다.

성 교수는 자신의 셈법을 바탕으로 우울한 한국 의료보험재정의 미래를 예견했다.

"고령화로 현재 약 900만명인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5년 후인 2050년에 약 1900만 명으로 두 배 증가합니다. 반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3600만명에서 2200만명으로 61%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직장 가입자 1인당 보험료가 100% 증가할 것입니다."

지금도 낸 돈에 비해 훨씬 큰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만, 나중엔 결국 부작용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한 달에 노인은 4만 2천원을 내고 그 7배인 29만 6천원을 씁니다. 생산가능인구 당 노인의 비율이 약 3배 이상 증가하면 젊은 사람이 내야 하는 건보료 부담이 1.5배로 늘어납니다. 직장가입자의 건보료가 소득의 14%까지 증가하면서 의료비 부담이 제일 비싼 나라가 됩니다. 복지부와 대통령은 이 엄청난 비용 문제를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계산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 교육·산업 생태계 동시에 망치는 의대 증원

성 교수는 서울공대 교수로 오랜기간 일해 온 만큼 이번 조치가 공학계에 미칠 파장도 크게 우려했다.

의대 대폭 증원은 대학 교육과 산업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부를 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2천명 증원시 당장 상위권 공대가 거의 '펑크난다'고 우려했다.

성 교수는 "2천명 의대 정원 증원은 서울공대·KAIST·포스텍·고려대 공대 우수 신입생(2,137명)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가 혼란, 그리고 산업계 우려를 동시에 전했다.

"지금 대학 교양과정부 1학년 학생의 재수·삼수를 위한 휴학 때문에 야단이 났습니다. 최소 10년 동안 의대 쏠림이 지속되면서 저출산과 함께 맞물려 산업 경쟁력의 엄청난 후퇴가 예상됩니다."

이 정책으로 젊은이 일자리, 노인 연금, 국민 모두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구 문제가 심각한 미래 한국경제에서 '기술 경쟁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정부가 인위적으로 '인재'가 더 의대 쪽으로 쏠리게 만들면서 '기술 한국'의 미래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은 한 명의 엘리트가 수만명, 수백만명을 먹여살릴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젊은 기술 인재의 출현을 막는 정책을 쓰고 있다.

■ 전문가 무시하고 전문가 양성 막는 한국 정책가들...이런 식이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한국은 사회 각 분야가 젊은층 인구 소멸에 따른 노령화로 큰 어려움을 맞고 있다.

사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20년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경고해 왔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전혀 풀지 못했다. 오히려 돈만 낭비하고 상황은 더 악화시켰다.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을 만큼 그간의 저출산 관련 정책은 형편없었다. 한국의 저출산 비극은 상당부분 무능한 관료들에 의한 '인재'다.

심지어 저출산 관련 예산 일부를 '남녀를 적(敵)으로 보게 만드는' 강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지원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이미 시기를 놓친 느낌이 든다.

다만 늦었더라도 지금같은 기형적인 인구 구조에선 무엇보다 '전문가'들을 더 소중히 대해야 한다.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엘리트 집단은 의대생 뿐만 아니라 공학자·기술자 등 각종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번 의료 사태에서 드러났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 당했으며, '아마추어'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국가 시스템을 너무나 손쉽게 난도질하고 있다.

사실 과거 성장시대 한국 경제를 이끈 주체도 과학자, 기술자들이었다.

경제 성장과 관련한 진실을 말하자면, 뛰어난 경제학자·인문학자·정치학자·법학자 등은 별로 도움이 안 됐다. 한국의 성장은 공학도나 기술자 등 과학도들이 이끈 것이다.

한국은 지난 성장시대에 낙후된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계 과학자들을 대거 불러모아 낮밤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매진해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던 나라다.

이 전문가들이 '국가 발전'이라는 대의에 공감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키워왔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이공계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성리학자들 목소리만 각광 받는 이상한 나라가 된 한국

현재 한국의 권력은 기술과 세계경제 조류에 문외한인 '21세기판 성리학자들'이 움켜쥐고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실학자들은 설 자리마저 뺏기고 있다.

한국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성리학자들이 실학자를 쳐 낸 뒤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지 잘 알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과학계 R&D 예산의 주먹구구 삭감 등을 보면서 성리학자들이 실학자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느껴져 걱정이 앞선다.

안타깝게도 이런 심각한 사태를 보면서 국민 다수는 성리학자들의 명분론(명분론의 대표적인 예가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를 강요하는 것이다)에 공감하고 있다.

21세기 중후반 한국의 미래를 상상할 때 조선 후기 망국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과민한 반응일까.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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