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신용평가사 피치가 12일(현지시간)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고 밝혔다. 다만 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피치는 이날 보고서에서 "프랑스 정부의 불신임 표결 패배는 국내 정치적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불안정성이 정치 시스템의 재정 건전성 확보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은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한 ‘국가 마비’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나왔다.
앞서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가 7월 정부 지출 동결과 공휴일 축소를 포함한 긴축 패키지를 발표한 이후 시민들은 분노했고, SNS를 통해 “9월 10일 나라를 멈춰 세우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바이루 전 총리는 지난 7월 공휴일 축소, 복지·연금 지급액 동결 등을 포함한 440억 유로 규모의 긴축 패키지를 내놨다. GDP의 6%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2029년까지 3% 아래로 줄이려는 조치였다.
이후 의회 불신임 표결로 사퇴한 바이루 전 총리의 후임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최측근인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자, 시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리 시위로 번졌다.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13일 프랑스 매체 인터뷰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공휴일 폐지 계획은 넣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싶다”며 “(공휴일 폐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긴축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안으로 정부 기구 통폐합, 지방 정부의 재정 자립도를 높일 분권화 추진, 전직 고위 공직자의 불필요한 특권 폐지 등을 언급하며 “더 효율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8%로 유로존 평균(약 3.1%)을 크게 웃돌았다. 정부 부채는 GDP의 113%를 넘어 그리스·이탈리아에 이어 유로존 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긴축을 둘러싼 혼란 속에 마크롱 2기 행정부가 2년도 안 돼 총리를 네 차례 교체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치는 “향후 몇 년간 정부 부채를 안정화할 명확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 부채가 2024년 GDP 대비 113.2%에서 2027년 121%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차입 비용이 증가해 재정 악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번 등급 강등이 내년도 긴축 예산안을 마련해야 하는 르코르뉘 신임 총리에게 큰 압박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현재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3.5082%로 10년물 이탈리아 국채 금리인 3.5216%와 거의 같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프랑스 국채에 대한 시장 신뢰가 사실상 이탈리아 수준으로 후퇴했다.
이번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프랑스 정가의 ‘책임 공방전’을 재점화했다. 긴축 정책을 추진하다 사실상 실각한 바이루 전 총리는 SNS를 통해 “엘리트들이 진실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나라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바이루 정부 퇴진을 주도한 극좌 성향의 ‘굴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성명을 통해 “새 정부 역시 시장 종속적 긴축 정책을 택한다면, 예견된 재앙을 맞이해 국가를 경제·사회·생태 위기로 더 깊이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