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한국전력 [뉴스콤 장태민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을 신설하는 기후에너지부나 확대개편할 기후에너지환경부 등으로 넘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걱정이 앞선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에 너무나 중요한 '에너지 문제'가 경제적 논리 대신 기후나 환경 논리에 묻히는 것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경제는 '에너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값싼 에너지'를 주된 경제정책으로 내세울 만큼 에너지를 싸게 확보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AI, 로봇, 반도체 등 첨단산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싼 에너지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금은 아무리 에너지가 친환경적이더라도 그 가격이 비싸다면 나라 경제에 독이 된다.
하지만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국내는 점점 더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고 있다.
■ 원가 높아지는 한국 제조업, 이러면 경쟁력 유지 어렵다
필자는 최근 수년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여태 본 적 없는 폭으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했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는 긴 여정에서 '값싼' 산업용 전기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싼 산업용 전기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다른 나라들도 한국을 상당히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수 년 사이 한국 제조업의 '원가구조'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에너지값이 단시간에 너무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안 그래도 중국의 과잉생산과 덩핑공세로 한국 제조업의 주축이었던 철강, 석유화학 등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료마저 대폭 올랐다.
최근 3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은 무려 75% 가량 폭등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총 7차례 올랐으며, 이 기간 인상폭은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2022년 1분기 1kWh당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4년 4분기에는 185.5원으로 80원(75.8%)이나 인상됐다.
이 기간 일반·주택용 전기요금의 인상폭(40.4원)에 비해 산업용의 인상폭이 2배에 달한 것이다.
주변에선 '그간 기업들만 싼 전기의 혜택을 누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한국의 싼 전기는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천이었다.
이제 이런 한국경제의 이점이 사라지고 있어 불안하다.
■ 에너지 정책, 한국경제에 너무 중요...독일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최근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자 유럽 최강국 독일의 산업이 크게 흔들린 이유는 에너지 때문이었다.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이 중단되고 그로 인해서 독일 등 유럽이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던 것이다.
값싼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서 독일의 산업 경쟁력은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독일에 들어와 있던 글로벌 기업들도 독일의 '비싼 에너지'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독일 경제에 더욱 타격을 입혔다.
전기 등 에너지 가격을 싸게 유지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특히 독일이 정책적으로 원자력과 거리를 두면서 비싸지만 친환경적인 에너지의 비중을 높인 것 역시 자국 산업에 큰 피해를 줬다.
독일은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기 전 이미 탈원전 정책을 시행해 '해선 안되는 정책'이라는 점을 잘 보여줬다.
탈원전 정책을 통해 원전의 위험성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전기요금 상승, 제조업 경쟁력 약화, 에너지 공급 불안정 등 많은 부작용을 겪었던 것이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 이후 전기요금이 뛰어 OECD 평균의 2배에 달했으며, 결국 전력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실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그 역사가 깊다.
지난 2000년 사민당-녹색당 정부가 원자력의 단계적 폐지를 공식화하며 탈원전 정책의 닻을 올렸다. 그런 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 폐쇄 방침을 결정하면서 탈원전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에너지 안보 우려 가중, 산업 경쟁력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을 나타냈다.
한국은 독일 상황을 반면교사 삼아 '에너지 방정식'을 잘 세워야 한다.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이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태양광을 통해 '싼 전기'를 확보할 수 있다면 태양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어떤 에너지원이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가격이 '비싸다면' 그 나라 산업 경쟁력을 좀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독일 등 '착한 에너지'에 현혹됐던 나라들의 실패는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현대제철의 미국 공장 건설이 키운 불안감...한국 '제조간접비' 경쟁력 확보 너무 중요
필자는 올해 초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건립한다고 했을 때 이러다가 한국 제조업이 공동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현대차그룹 '덕분에' 미국 루이지에나 제철소와 조지아 전기차 공장에서는 1만개에 가까운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해 씁쓸했다.
필자는 당시 현대제철이 한국 공장을 버리고 미국으로 날으려는 이유 중엔 낮은 '전기 가격'이 있었던 것 아닌가 의심했다.
당시 이런 의심을 충족시켜주는 '객관적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건설하는 전기로 제철소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메가와트시(MWh)당 약 51.1~52.8달러(한화 약 7만7,000원~7만9,000원) 수준으로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매우 저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루이지애나는 풍부하고 저렴한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값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다.
안 그래도 트럼프가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에 공장 지으라'고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책적으로도' 스스로 원가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이재명 정부 모두 값싼 원자력 대신 다른 에너지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필자는 또 원전 회복을 공약했던 윤석열 정부가 해상풍력 200조원을 주장해 의아하기도 했다. 현재의 기술을 감안할 때 한국은 풍력을 통해 에너지를 싸게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국의 날씨는 변덕을 자주 부리며, 한반도의 태양력과 풍력은 질이 좋은 편이 아니다.
제조업에서 전기요금은 대표적인 제조간접비 항목이다. 그리고 첨단산업들은 전기를 더욱 많이 먹고 있다.
■ 한국, 에너지 정책 잘못 설계하면 산업공동화 심화된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의 포항, 여수와 같은 대표적인 산업도시들이 공동화에 빠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친환경'을 앞세운 태양광, 풍력 에너지에 대한 찬사만 이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태양광, 풍력 에너지를 얻는 데 돈이 적게 든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문제는 한국 자연환경에서 이 에너지들은 비싸다는 점이다.
정책적으로 볼 때 원자력에 대해 좀더 전향적인 태도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한국은 오랜기간 가장 값싼 전기의 원천인 원자력 발전소를 제대로 짓지도 못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비싼 에너지는 산업의 독(毒)이다.
안 그래도 트럼프가 미국에서 공장 지으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원가가 올라가면 국내 기업들이 해외 '오프쇼어링'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한국이 계속해서 반도체 산업을 기반으로 먹고 살려면, 기업들이 물과 전기를 싸게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후나 환경을 핑계로 한국의 산업정책이 혹시라도 자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걱정이 기우이길 간절히 바란다.
주변에 '친환경' 에너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국 '제조업 말살'에 앞장서는 행위를 하는 것일 수 있다.
친환경이더라도 '비싸다면' 결코 착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