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달러/원 환율은 이달 13일 1,410.6원을 찍으면서 1,410원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이더니 최근 트럼프 트레이드가 다소 되돌림되면서 1,400원을 하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300원대 후반에서 추가로 하락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는 등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당선 전부터 '트럼프2기 가능성'으로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았으며, 트럼프 당선 이후엔 1,400원을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한국에 달러/원 1,400원은 20세기 말 한국 경제가 최대 위기에 몰렸던 IMF 사태나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불어 일으킬 정도로 예민한 레벨이다.
다만 현재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진 것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트럼프라는 희대의 스트롱맨이 다시 등장한다는 소식에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가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트럼프1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달러 강세를 원치 않았다는 강렬한 기억도 가지고 있어 지금의 달러 고공행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 달러/원 고공행진이지만...글로벌 달러 강세 여파
달러/원 환율은 3시30분 종가기준으로 지난 9월 30일 1,307.8원까지 떨어진 바 있다.
당시 일각에선 환율이 1,300원을 하향 돌파해 빅피겨를 바꿀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달러/원은 무섭게 치고 올라와 11월 13일엔 1,406.6원으로 뛰었으며, 장중엔 1,410원을 넘기도 했다.
달러/원 1,400원대는 과거 금융위기 기억을 못 버리는 일반인, 그리고 정책 당국자 모두 '긴장할 수 밖에 없는 레벨'이어서 당국은 구두개입을 통해 '지나치다'는 식의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다만 환율 오름세(자국통화 가치 하락)은 한국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트럼프라는 '실력자'의 등장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실현'에 미국 밖의 세계가 모두 긴장했던 것이다.
지난 9월 30일부터 이달 20일(달러/원 1,390.9원 기준)까지 원화가치는 달러에 대해 6.0% 떨어졌다.
달러인덱스 바스켓에 묶인 6개국 통화는 같은기간 5.5% 남짓 하락했다.
나라별 차이는 있지만 달러를 제외한 전세계 '기타 통화'들이 대체로 달러에 힘을 못 쓰고 있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긴장감으로 달러인덱스는 107을 넘기도 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달러 강세, 금리 상승, 미국 주가 상승, 비트코인 상승 등은 더욱 힘을 받았다.
■ 트럼프 정책 기대감이 만든 강달러 - 주식
미국 상당수 기업이나 뉴욕 주가가 트럼프에 환호한 일차적인 이유는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자 뉴욕 주가지수가 3.5% 내외로 급등하면서 기업 친화적인 스트롱맨을 반겼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세계의 돈들은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선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상당수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국장'이라고 폄하하면서 미국으로 떠났다.
상당수 투자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동학은 자멸했으며, 결국 서학을 공부하는 개미로 변신하는 게 살 길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사실 미국 경제의 독주도 장기화돼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투자자들이 미국을 선호한다. 미국은 정작 2008년 금융위기의 본고장이었으나 이후 다른 선진국을 압도하는 성장세를 보였으며, 이는 주식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듬해인 2009년 35%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5%로 높아졌다. 물론 미국 주가 상승률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201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AI 등 첨단기술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으며, 기후 변화 고려 등 '착한 경제'에 천착했던 유럽은 몰락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재등장하자 세계 각국의 돈들은 미국으로 몰리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달러가 본고장으로 발길을 옮길 것이란 예상이 힘을 얻자 달러가치는 급등했다.
다만 감세를 하면 미국 재정당국이 쓸 돈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있다. 나라 살림 규모를 세수에 따라 하면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으나 트럼프는 '스트롱맨'이다. 즉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다.
결국 미국은 세수가 줄고 빚이 늘어날 수 있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 미국채 금리 급등이 만드는 강달러 - 채권
지난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6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재정지출을 늘리게 되면 적자는 더욱 커지게 된다.
코로나 사태 여파가 크긴 했지만, 2020년 미국 재정적자는 무려 GDP의 14%에 달할 정도였다. 트럼프 집권 마지막 해엔 미국의 빚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과거의 '습성'을 못 버렸다면 미국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는 지금도 어마어마한 미국의 국채 잔액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작년말 미국 국채 잔액은 26조 달러였다. 이는 미국 GDP인 29조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미국 채권시장은 트럼프 당선 뒤 국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금리를 높여야 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트럼프 당선 후 4.5% 수준까지 뛰기도 했다.
사실 상당기간 미국채 금리는 트럼프 당선 '확률'에 따라 움직였으며, 당선 확정 뒤엔 '경계감과 기반영 정도'에 따라 등락 중이다.
그런데 이처럼 미국 채권가격이 떨어지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안전자산 미국채 좀 사볼까' 하는 욕구를 키울 수 있다. 미국 채권에 투자하고 싶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달러를 원하게 되면 미국 달러 가치는 또 높아진다.
글로벌 펀드 자금들은 최근 주식, 채권을 막론하고 미국으로 강하게 유입됐다.
올해 중 미국 주식펀드 자금은 3,100억불 넘게 유입됐으며, 채권펀드도 5,500억불 넘게 들어왔다.
■ '네 이웃을 거지로 만들어라' - 관세
사실 많은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들이 '트럼프의 미국'을 걱정하는 이유는 '관세'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60%, 그리고 보편관세 10~20%를 말해왔다.
현재 관세가 '제로'이거나 많아 봐야 2% 정도인 상황에서 트럼프의 계획은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미-중 패권전쟁 중이니 중국이야 그렇다치고 다른 나라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가 보호무역을 강화해 한국 수출 등이 타격을 입게 되면 한국의 달러는 부족해질 수 있다.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독일, 일본 등은 미국 수출이 매우 중요한 국가들이다. 이런 나라의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이전보다 부족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특히 과거 IMF 위기 등으로 고환율 트라우마도 갖고 있는 국가다.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 최악의 경우 달러가 한국을 탈출하면서 금융시장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 한국에 투자한 돈들이 빠져 나가면 한국 기업들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처럼 기업 상황이 어려워지면 한은이 조달비용을 낮춰서(금리를 내려서) 기업들을 도와주려 할 수도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이 실린 착한 통화정책을 쓰다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부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낮추면 외국인 자금이 더 빨리 빠져나갈 수도 있다.
현재도 한국은 경제의 체력에 비해 높은 금리를 물고 있다. 환율 문제로 금리를 낮출 수 없게 되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더욱 악화될 수 있으며, 주식 등 자산가격은 하락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일엔 양면성이 있다. 국내 수출기업들에겐 유리한 점도 있다. 달러/원 환율이 고공행진을 벌이는 상황에선 미국인들이 '강해진 달러와 약해진 원화' 덕분에 한국 제품을 보다 싸게 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원화 약세는 미국이 한국에 물릴 수 있는 '관세'를 희석하는 효과가 있다. 단순히 접근해서 미국이 한국에 관세를 20% 올렸는데 원화가 10% 약해졌다면 '실질적' 관세 압박은 10% 정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트럼프와 싸우는 트럼프
트럼프의 정책들은 달러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1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 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사사건건 연준과 부딪혔으며, 연준 의장을 하던 옐런도 연임시켜 주지 않았다. 그런 옐런을 바이든이 재무장관으로 써먹고 있다.
트럼프는 달러를 약하게 만들어 미국 수출을 늘리고 싶어 한다.
트럼프와 트럼프 1기 때 USTR 대표를 한 라이트하이저 같은 사람들은 세계의 물건을 미국이 사줘서 생기는 '적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그의 눈엔 달러를 제외한 엔, 위안, 원 등의 저평가가 의심스러워 보였다.
지난 14일 미국 재무부는 '환율 보고서'를 통해 한국, 일본, 중국, 독일 등 7개국을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했다.
미국은 이런 판정을 내릴 때 △ 대미 상품 및 서비스 무역흑자 150억불 이상 △ 경상흑자 GDP의 3% 이상 △ GDP의 2% 이상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라는 3개의 허들을 활용한다. 한국 등은 무역·경상 흑자 부문에 '걸려서' 관찰대상국이 됐다.
트럼프 시대가 다시 도래하면 미국이 자신들에게 큰 이익을 내는 한국 등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있을까. 사실 이 스트롱맨들이 강달러가 관세 인상 효과를 상쇄하는 것을 용납하길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트럼프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시각도 많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미국 입장에서 '애국자'(!)다. 미국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서 미국인들이 잘 먹는고 잘 사는 것을 우선 순위에 둔다.
■ 다시 트럼프 변덕에 휘말릴 달러
트럼프의 정책들은 '달러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약달러를 원하기 때문에 '트럼프와 싸우는 트럼프'라는 이상한 구도가 눈에 들어온다.
금융시장은 속성상 선반영한다. 트럼프가 집권하기도 전에 외환시장은 미국의 교역대상국들을 향한 관세, 자국기업을 위한 감세, 그리고 규제완화를 감안해 강달러 흐름을 연출했다.
강달러 정책을 쓰지만, 강달러를 원치 않는 트럼프가 나름대로 '아킬레스건'을 극복하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 '연준 압박과 길들이기'다.
옐런이 마음에 안 들어 연임을 안 시키고 파월에게 연준 의장 자리를 줬더니, 그도 역시 말을 잘 듣지 않았다. 트럼프가 야인 생활을 할 때도 연준을 지휘한 파월은 또 다시 트럼프와 마주치게 된다.
트럼프가 자신의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해 파월을 내버려 두더라도, 그의 임기는 2026년 6월에 끝난다. 파월은 2018년부터 연준 의장을 했다.
트럼프 1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향후 달러의 가치는 '트럼프의 의지'와 '경제 상황 반영' 사이에서 오락가락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초기부터 달러가치 높다고 비난했던 인물이다.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해 달러가치는 트럼프 취임 때부터 추락했다.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취임 때 102 수준이었지만, 1년 후인 2018년 1월엔 9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억지로 달러가치를 '조작'(?)하다보니 달러 가치는 - 코로나 등 다른 요인도 많지만 - 다시 튀어 트럼프가 퇴임을 앞둔 2020년에 다시 100 위로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가 퇴임할 때는 재차 90선으로 내려오는 등 달러인덱스는 '트럼프와 경제 상황'이라는 두 변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트럼프 시대 달러에 대한 인위적인 억압은 다른 나라로부터 '신뢰'를 상당부분 잃어버리기도 했다.
각국은 트럼프 1기 취임 초기 70%에 육박했던 외환보유액의 달러 비중을 트럼프 퇴임 때는 50%대 후반으로 낮춰버렸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 미국 경제는 더욱 독주해 첨단산업의 메카가 됐다. 그리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비해 더욱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과거 자유주의 세계에서 경쟁하던 유럽, 일본 등이 상대적으로 몰락했으나, 대신 권위주의 세계의 맹주가 된 중국이 열심히 미국을 쫓아왔다. 트럼프2기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 중국과 싸우면서 우방국들에게도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