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올해 국민연금 국정감사 최대 관심사는 기금의 자산배분 문제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 1월 회의에선 '리밸런싱 유예', 5월 회의에선 '국내주식 투자비중의 파격적 상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리밸런싱 유예와 국내주식 비중 상향이 정치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 국민연금, 국내주식 비중 증가의 미스터리
올해 1월 26일 기금위 회의에선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4%에서 14.9%로 0.5%p 인상했다.
이날 회의에선 또 리밸런싱 유예라는 '큰 결정'을 했다.
코스피 상승으로 인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중이 목표치를 넘어섰으나, 기계적으로 주식을 팔아 치우는 리밸런싱 매도를 6월말까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후에도 코스피지수가 뛰자 5월 회의는 국내주식 비중을 '대폭' 상향조정했다.
국내주식 비중을 14.9%에서 20.8%로 5.9%p 추가 상향했다.
6월말 리밸런싱 유예 기간 종료를 앞두고 유예가 끝나더라도 대규모 기계적 매물 폭탄(오버행)이 국내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목표치 자체를 대폭 높인 것이다.
이후 올해 7월엔 금액기준 역대 최대규모의 주가 폭락이 나타났다.
주식시장에선 정부가 국민연금 자산배분에 간섭하고 단일종목레버리지ETF를 도입한 후폭풍으로 주가가 폭락했다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날 국감에선 야당 의원들이 국민연금 자산배분의 윗선을 캐물었다.
하지만 김성주 이사장은 '독자적 결정'이라고 맞섰으며, 여당 의원들은 야당의 비판을 봉쇄하는 데 앞장섰다.
■ 2026년 국감, 김용범 꽁꽁 숨기기...회의록도 2030년에나 볼 수 있어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은 "국민연금 국감에 김용범 전 정책실장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채택이 불발됐다. 여당이 막아서 당사자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고 개탄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를 하는 의원들에게까지 회의록마저 안 주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회의록은 4년 뒤인 2030년에나 공개된다.
백 의원은 "계속 회의록를 주지 않으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김용범 엄호'에 나서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 자리에 나올 필요 없다고 했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은 "국힘이 김용범 전 정책실장을 왜 국민연금 국감 증인으로 요구하고 민생을 방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또 "(기금위) 회의록을 비공개하는 것은 법에 따른 것"이라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안에 대해선 회의 4년 뒤 공개할 수 있다.
서 의원은 따라서 "회의록 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꼴"이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공개를 주장하자, '안건 회의록 공개하라는 주장은 위법행위'라고 맞섰다.
회의록 공개 요구는 기금운영위원회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으며, 국민 민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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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대통령 자산배분 개입 의혹 놓고 여당·국민연금-야당 대치
국민연금은 가입자 2156만명, 규모 1684조원의 거대 공룡이다.
공단 인원만 해도 7331명이나 되며, 예산도 7192억원을 쓴다.
국민이 낸 돈을 받아 투자를 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이나 정치적 결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자산배분 개입'을 의심했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연금이 권력 압력에 굴복한 정황이 많이 포착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9월(취임 100일)부터 연달아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을 문제삼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2025년말 국민연금이 150조원을 벌었다고 하자, 대통령이 국내주식 투자 비중을 어떻게 할지 묻기도 했다"면서 연금의 국내 주식비중 확대는 대통령의 의중을 받들어 이뤄졌다고 의심했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런 의혹을 일축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 투자비중 조정 등과 관련한) 1월과 5월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회의록 비공개는 법 따라 이뤄진다. 비공개를 할 수 있는 법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졌다"면서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연금은 민감한 수치를 밝히지 않을 수 있다.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선 여야 모두 비공개하는 데 동의했던 것"이라고 했다.
■ 정치인 김성주가 이끄는 국민연금...아마추어의 한심한 자산배분 결정
국민연금 기금위의 1월 자산배분 유예 결정, 5월의 대대적인 국내주식 비중 확대 등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장 주가가 오른다고 '장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자산배분 비중을 바꾸거나, 리밸런싱을 유예하는 것은 투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납득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대 연기금은 장기적 재정 안정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올해 자산배분 행위는 국민연금이 단기적인 주가 부양이나 정무적인 부담 완화를 위해 자산배분의 '기본 원칙(IPS)'을 어긴 사례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연기금 운용의 핵심인 독립성과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을 스스로 저버리고 자금의 정치화라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김성주 이사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놓았다.
김 이사장은 "1월, 5월 회의 땐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 등을 보면서 한국 주식시장에 대해 낙관했다. 그런 보고서들을 보고 그런(비중) 결정을 했다"고 했다.
여당 의원들도 리밸런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출신 이수진 의원은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 회의록 비공개는 문제가 없다. 국내주식 목표가 14.9%였지만, 6월말 실제 29.1%로 올랐다(주가가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의원은 "국민연금 리밸런싱 유예는 잘한 결정"이라며 "리밸런싱을 했을 때 현금화가 됐으면 주식시장에 더 악영향을 주고 연금 수익률도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리밸런싱을 과도하게 미루고 억지로 한국주식 비중을 높이면서 7월 주가 급락 등이 초래됐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연금의 1월 1차회의와 5월 5차회의가 중요했던 이유는 (자산배분 기준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며 "(평소대로) 기계적인 매도가 이뤄졌으며, 개인투자자들이 불나방처럼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등 주식시장이 과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업계에선 김성주 이사장의 '국내주식 전망이 좋아서' 자산배분 비중을 높였다는 발언, 여당 의원들의 아무 문제없었다는 주장 등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자산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올해 국민연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본헤드 플레이를 했다"면서 "장기투자 관점에선 주가가 상승했을 때 기계적으로 일부를 매도(수익 실현)해 위험을 분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기본"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올해 국민연금은 기본을 어기고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끌어올려 고점에 자산이 과도하게 쏠리도록 방치했다. 누가 개입했는지,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면 그 사람을 조사해서 처벌을 해야 할 사안"이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자산운용이 특정 '정치적 목표를 감안해 정치성을 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민연금 CIO가 바뀌면서 환매 얘기들이 있었고 주식투자와 관련해선 소위 '조방원'의 매물화가 이번 인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면서 "국민연금은 이재명 정권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서 펀드를 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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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본부장의 이상한 답변...뭔가 말 못할 두려움 의심
국민의힘 의원인 이만희 국회 복지위원장은 "국민연금은 리밸런싱을 2월~6월 유예했다. 리밸런싱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운용 결과가 달랐을 것이며 관련된 자료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자료를 요구했다.
이 위원장은 김성주 이사장 대신 이규홍 국민연금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CIO)에게 자료를 부탁했다.
이 본부장은 그러나 "취임 1달밖에 안 되서 업무파악 중"이라는 답을 했다.
이 본부장은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NH-Amundi자산운용·사학연금 등을 거친 투자전문가다.
국힘 이달희 의원은 "이규홍 CIO는 취임 1달이 됐다. 아직도 업무파악 중이어서 리밸런싱 시뮬레이션 자료를 못 준다니 말이 되는가"라며 "국회를 무시한 점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김성주 이사장이 나섰다.
김 이사장은 "(이규홍 기금운용본부장이) 온지 얼마 안 된 사람 아니냐. 나한테 질문하라"고 했다.
이에 이만희 복지위원장이 발끈했다.
이 위원장은 "김성주 이사장의 그런 발언은 부적절하다. 다들 국감 증인 아니냐"고 따졌다.
이 위원장은 "국민연금엔 국민들에게 공개 못할 비밀이 뭐가 그렇게 많은가. 시뮬레이션도 공개 못하게 법으로 돼 있나"라고 개탄했다.
■ 정치인 국민연금 이사장...그리고 기금위 전문성 부족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은 김성주 이사장의 자질을 문제삼았다.
조 의원은 "국민연금이 주식비중 시뮬레이션 자료까지 못 주는 건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라며 "특히 김성주 이사장은 금융전문가도 아닌 정치인으로 2번씩이나 국민연금 이사장을 해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주 이사장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직을 두 번(제16대, 제19대)이나 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제16대 이사장(2017년 11월~2020년 1월)을 거친 뒤 이재명 정부 들어 제19대 이사장(2025년 12월~현재)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시기엔 2년 2개월 재임한 후 제21대 총선(전주 병) 출마를 위해 임기를 10개월 정도 남겨두고 중도 사임해 큰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당시 김 이사장은 총선에 출마하면서 "700조원 국민연금이 전북발전의 힘"이라는 이상한 표어를 내세워 선거운동을 했다.
최근 국민연금 이사장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많은 뒷말을 남겼다.
김 이사장은 제22대 총선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재임명돼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역사상 같은 인물이 이사장으로 두 번 임명된 것은 김성주 이사장이 처음이다.
조배숙 의원은 김성주 위원장뿐만 아니라 기금위원회 전체가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조 의원은 "현재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이 잘못돼 있다. 정부 쪽 사람이 너무 많고 전문성도 없는 한노총·민노총·공공노조 등이 들어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이사장은 이런 비판에 대해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성 부족은 그 밑에 있는 투자정책자문위원회가 도와준다. 여기서 의견이 조정된 후 기금운용위원회로 간다"면서 "정부 측 위원은 많아서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조배숙 의원은 희한하게도 현재 '주식시장 혼란을 초래한 3인방'이 문재인 정부 기금위에 참여한 인사들이라는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문재인 정부 국민연금의 2021년 전략적자산배분(SAA) 의사 결정에 참여했던 인물이 현재 주식 혼란 3인방들인 점이 눈에 띈다"면서 "김용범(당시 기재차관), 이억원(차관), 이찬진(참여연대 민간위원)이 당시에도 있었다"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