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성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앞으로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 사장은 전날 LH 국정감사에서 "지금 저희가 공급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이 '좀 많다'고 주장했다.
이 사장이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대출 규제를 하는 이유'를 물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서울 변두리 서민이 매수할 수 있을 만한 아파트 값마저 일제히 폭등한 가운데 LH 사장이 집값 하락을 경고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 이성훈 '집값 띄울 2가지 요인+집값 낮출 1가지 요인'
이성훈 사장은 최근 추가적인 대출 규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단 집값 추가 상승을 막기 위한 수요 차단 필요성 때문이었다.
이 사장은 9월 30일 기자간담회에서 "15억원 이하 주택에 적용되는 주담대 최대 6억 원 한도를 4억원 수준으로 더 조이고 생애최초 LTV 70%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출을 더 조이자고 한 이유는 주택 공급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LH가 3기 신도시와 최근 발표(8·8 공급대책) 등을 통해 대규모 주택 공급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 착공과 입주까지는 수년의 타임 랙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은 따라서 공급이 본격화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패닉 바잉'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생애최초 LTV 70%를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자들이 다른 사람보다 완화한 대출기준(LTV 70% 및 6억 원 한도)을 활용해 영끌 매수에 나서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무주택자들의 FOMO(소외에 대한 공포) 심리가 집값을 적정 가격 이상으로 띄울 수 있는 위험도 거론했다.
즉 이 사장은 △ 공급 시차 동안의 패닉 바잉(경쟁적 매수) 차단 필요성 △ 생애최초 LTV 70%가 집값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 등으로 '대출 규제'를 일단 주장했다.
■ '미래에 일어날 집값 폭락'...이것도 '대출규제'가 필요한 이유
그런데 '세 번째' 대출 규제 주장의 이유는 좀 특별했다.
이 사장은 미래의 '집값 폭락'을 경고하면서 지금 대출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향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주택 공급이 본격화되면 집값이 급락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대출을 많이 받고 진입한 실수요자들이 추후 자산 가격 하락 폭탄을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대출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사장의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출을 그냥 두면(줄이지 않으면) 단기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난 뒤 집값이 폭락할 수 있다.
대출을 지금보다 더 줄이면 시장 수요가 안정되고 실수요자들도 고점에서 무리해서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나중에 집값이 폭락하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 어이없는 LH사장...지금 집값 폭락 걱정할 때인가
지금 서울 지역에선 역대급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는 중이다.
정부는 '실거주 1주택 강요'를 통해 전월세 씨를 말리는 동시에 서울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LH사장은 "내가 만드는 집이 나중에 값어치가 떨어질 테니 지금은 빚내서 사지 말라"고 타이르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제품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 공장장이 소비자에게 소비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꼴이다.
LH의 올해 공공주택 착공과 매입임대 실적은 목표치의 10~20%대에 머물며 바닥을 치고 있다.
자신이 담당한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마저 걷어차겠다는 주장이나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수요자 보호'라는 기만적인 포장술을 구사하고 있다.
■ 주택공급이 LH 사장의 할 일
사람들은 주택 공급 기관인 LH의 수장이 공급을 제대로 이행하기 보다 실수요자(생애최초 구매자)의 자금줄을 죄는 방안을 제안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LH라는 기관의 설립 목적, 권한의 범위, 그리고 시장 신호 효과 측면에서 역할의 부조화(Role Conflict)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LH는 토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건설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본연의 임무다.
가계부채 관리나 LTV·DSR 등 대출 규제는 금융위 등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이성훈 사장이 해야 할 일은 주택 공급 부족 우려를 해소하는 일이다.
자기 권한 밖인 "대출을 죄어 수요를 누르자"고 하자 사람들이 "자기 일(주택공급)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남의 다리를 긁고 있다"는 식의 비판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이 사장의 발언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3기 신도시 등 LH가 추진 중인 주택 공급엔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수요를 제어하는 게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LH 사장이 '공급 스케줄'을 얘기하는 대신 '수요를 축소하자'고 하는 순간 시장엔 '주택공급이 계속 힘들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signal)가 갈 수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LH사장이 '수요 감축 필요성'을 강조하자, 공급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가 일 수밖에 없었다.
■ 실수요 대출 규제에 가해진 '분노'...이억원 위원장의 '잘못된 소신'
이성훈 사장이 문제로 삼은 대출은 '생애최초 LTV 70%'와 '실수요자 대상 주담대 한도'였다.
이런 대출들은 주거사다리 마련을 위해 '최소한의 금융'이라고 할 수 있다.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가 내 집 마련을 위해 이용하는 금융 수단을 걷어차선 안 된다.
세간에선 "LH사장이 투기 수요를 잡는 게 아니라 진짜 집이 필요한 서민과 청년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실 부동산과 금융은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필자의 한 지인은 이성훈 LH 사장의 '대출 축소 발언'을 두고, 어쩌면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배다른 형제이지 않을까 하는 농담을 했다. 문제는 그런 얘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국회 등에서 "부동산 시장과 금융의 절연이 개인적인 소신"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이는 엉터리 소신에 불과하다.
금융과 부동산은 형제나 사촌관계처럼 밀접하게 엮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억원 위원장은 △ 부동산과 연계된 가계부채의 금융 시스템 리스크 전이 차단 △ 대출의 집값 상승 자극 억제 △ 부동산에 몰린 시중유동성을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시킬 필요성 등의 차원에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조금만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현실적으로 부동산과 금융의 절연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택과 토지는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유동성이 높고 안정적인 담보 자산이다.
부동산 시장과 금융을 인위적으로 '절연'하겠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거대한 자산 시장과 금융 시스템의 연결 고리를 강제로 끊겠다는 선언과 같아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
아울러 대출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구매력 증가)를 막아버리면, 결국 현금 부자들만 부동산을 독식하는 결과도 나타난다.
사실 이재명 정부 출범 뒤 강화된 '대출 규제'는 상대적으로 현금 부자들에게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안겼다.
■ 정부, LH 재무구조 불구로 만드는 중
현재 LH의 부채는 200조원 안팎이지만, 2030년 예상 부채는 372조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공사채 발행 규모는 16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H 재무구조가 가파르게 악화되는 이유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지으면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택 공급 목표를 높여 잡을 때마다 LH가 공사채를 발행해 사업비를 충당하는 구조이다 보니, 정부의 공급 정책 성과와 LH의 재무 건전성이 반비례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공공임대 확대와 3기 신도시 추진 등으로 LH의 장기적인 재무부담이 커졌다. 이후 윤석열 정부 들어 토지 보상 집행, 고금리·원자재가 폭등 등으로 LH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이재명 정부 들어 '공공임대' 강화는 LH의 재무를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공공주택이 답'이라는 이상한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LH는 국민세금 먹는 하마가 될 것이다.
그간 LH는 대규모 택지 개발 지구를 조성한 뒤, 이를 민간 건설사나 시행사에 아파트 용지·상업용지 등으로 비싸게 팔아 이익(택지 매각 이익)을 남겼다.
LH는 또 5년이나 10년 등 임대로 살게 한 뒤 분양전환 시점이 되었을 때 무주택 임차인에게 소유권을 매각해 목돈을 회수하고 그동안 누적된 임대 운영 적자를 메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이재명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 등 '공공'에 목을 매고 있다. 정책이 이런 식이면 결국 LH에 엄청난 국민 세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는 놀라울 정도로 민간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부가 '공공임대가 선'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이상 국민들이 선호하는, 즉 시장 니즈에 맞는 주택공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참으면 주택 공급 홍수로 인해 집값이 하락한다고?
그저 라면을 무진장 공급하면, 설렁탕 값이 떨어지는가라고 묻고 싶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