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은 현지시간 11일 연설을 통해 행정부의 중앙은행 압박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미국 법무부는 연준 의장이 지난해 의회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파월은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면서 행정부의 통화정책 독립성 위협에 맞서겠다고 했다.
■ '중앙은행 독립성' 수호에 나선 연준 의장 제롬 파월...'나는 정치적 인물 아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금요일(9일) 법무부의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에 대해 당당히 맞서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파월은 11일 "지난 6월 내가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증언한 내용과 관련해 법무부가 형사 기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자신은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작년 6월 파월의 증언은 연방준비제도 사무실 건물을 개조하는 다년간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법무부는 파월이 의회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월은 법무부와 정면대결을 택했다.
그는 "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책임성을 깊이 존중한다. 누구도, 특히 연준 이사회 의장은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면서 "하지만 전례 없는 조치는 행정부의 위협과 지속적인 압력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파월은 법무부, 즉 행정부가 자신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월은 "이번 새로운 위협은 지난 6월 내가 한 증언이나 연방준비제도 건물 개보수 공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의회의 감독 역할과도 무관하다"면서 "연준은 증언과 기타 공개 자료를 통해 개보수 사업에 대해 의회에 알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은 모두 구실일 뿐이다. 연준은 대통령의 선호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익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금리를 설정한 결과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연준이 증거와 경제 상황에 근거해 금리를 설정할 수 있을지, 아니면 통화 정책이 정치적 압력이나 협박에 의해 좌우될지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파월은 자신이 민주당, 공화당 등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웅변하기도 했다.
파월은 "나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4번의 행정부에서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근무했다"면서 "모든 경우에 정치적 두려움이나 편파적인 태도 없이, 오직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우리의 책무에만 집중해 직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 생활은 때때로 위협에 맞서 굳건히 버티는 것을 요구한다"면서 "상원의 인준을 받아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미국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파월, '떳떳함' 강조하며 적극 대응
2025년 6월 파월 의장은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2022년 착공된 연준 건물의 개보수 비용(총 $25억)이 초기 제안 대비 과도하다(약 $7억 초과)는 주장에 대해 해명한 바 있다.
파월은 당시 비용 상승은 예상보다 많은 석면, 토양 오염 등에 기인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작년 7월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 국장은 파월 의장이 계획위원회가 승인한 기존 계획을 준수했는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내용으로 서한을 작성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7월 하순(24일) 연준을 방문해 건물개보수 현장을 시찰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후 올해 들어 미국 법무부는 연준을 더욱 압박했다. 법무부가 연준 의장이 의회에서 허위 증언을 했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파월은 행정부의 압박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면서 당당한 대응을 천명했다.
현지시간 11일 저녁 파월 의장은 성명을 통해 연준 건물 리노베이션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Grand Jury) 소환장을 송달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수사를 본인과 무관한 연준에 대한 행정부의 압박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대배심은 형사 재판 개시를 결정하는 사전 절차다. 검찰 수사 개시 후 소환장 발부 → 증거 제시 → 대배심 판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정식 기소의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
■ 파월 옹호하는 사람들과 트럼프 백악관의 '발뺌'
파월의 성명 발표 이후 미국 행정부 외에선 중앙은행 총재를 응원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우선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이 상황은 극도로 소름 끼친다. 금융시장이 이 사안을 더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면서 "시장은 분명히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준 의장을 역임한 뒤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일한 옐런은 "내가 아는 파월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제로(0)"라면서 적극 옹호했다.
옐런은 "이번 사안은 파월의 자리를 노리고 그를 몰아내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공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옐런은 특히 "연방 부채의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무책임하다. 통화정책이 정치적 압력에 종속된다면 이는 제도와 법치가 훼손된 ‘바나나 공화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FOMC 부의장인 뉴욕 연은 총재도 파월의 청렴함을 옹호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은 총재는 "개별적인 법적 수사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면서도 파월 의장에 대해 "흠잡을 데 없는 청렴함을 지닌 리더"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공격하는 행위는 종종 높은 인플레이션을 포함한 매우 불행한 경제적 결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이 중앙은행 총재를 특별히 압박한 것 없다면서 '오해'(?)를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 '법무부의 사안 규명'을 지켜보자고 했다.
백악관은 파월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을 부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법무부에 수사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백악관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은 연준 의장을 비판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파월 의장이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법무부가 판단할 사안이며, 법무부는 해당 사안을 규명할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트럼프의 중앙은행 압박, 금리 시장도 '불편'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적극적이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금리를 더 빨리, 더 큰 폭으로 인하했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하지만 연준이 말을 듣지 않다 파월, 쿡 등 연준 정책가들을 '위법 행위'로 엮으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이후 새해 들어 법무부가 파월을 형사 기소하려 하자, 전 연준 의장과 경제학자들이 나서서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의 파월 압박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미국 정치권에선 민주당 뿐만 아니라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연준 압박에 대해 비판했다.
특히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 부각에 대해 '개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며 이런 식으로 중앙은행을 압박하면 인플레이션이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갈 수 있다는 주장들도 제기된다.
금리 인하를 종용해 연준의 인플레이션 통제를 제약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금리를 더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대형 자산운용사 PGIM(Prudential Global Investment Management)은 "행정부가 연준의 인플레이션 억제 능력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는 국채 금리 상승, 이에 따른 전반적인 금융비용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트럼프식 중앙은행 압력이 통화정책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들도 나왔다.
간밤 미국 달러화는 파월에 대한 기소 위협으로 하락했다. 국채 금리는 보합권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제한적인 약세를 나타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일면서 미국 시장의 장기금리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가 금리를 대폭 낮추라고 요구하는 게 오히려 장기 금리를 상승시킬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준이 물가 상승을 포기하고 단기적인 성장만 추구할 경우 인플레 기대심리가 더욱 자극돼 장기 금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