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신한투자증권은 5일 "베네수엘라 사태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남미 경제에 '양날의 검'과 같다"고 진단했다.
하건형 연구원은 "성공적인 정권 교체는 유가 안정과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겠지만 실패할 경우 에너지 공급망 불안과 신흥국 금융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명확하다고 했다.
초기 군부의 움직임이 '파나마식 조기 안정'으로 갈지, '이라크식 장기 혼란'으로 갈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하 연구원은 "현재로서는 미국의 정밀한 작전 수행과 국제사회의 압박 등을 고려할 때 파나마 모델을 따를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으나,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 또한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단기적으로는 인접국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유가의 일시적 등락에 유의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베네수엘라 원유의 시장 복귀 속도가 글로벌 에너지 가격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베네수엘라 침공, 파나마 사태와 이라크 사태 참고해야
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는 형식 면에서는 국가 원수에 대한 사법적 체포를 감행했던 1989년 파나마 침공과 유사하다. 다만 대상이 막대한 원유를 보유한 산유국이라는 점에서는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궤를 같이한다.
하 연구원은 "이번 사태의 영향은 과거 파나마와 이라크 사태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1989년 12월 미국은 파나마의 실권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해 전격적인 침공을 단행한 바 있다. 노리에가는 과거 CIA 협력자였으나 반미 노선으로 선회했던 인물이다. 미국 마이애미 연방법원은 마약 밀매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은 이를 명분으로 자국 군대를 투입해 형사범으로 체포해 미국 법정으로 압송했다.
단기 국지전과 물류 정상화 당시 파나마 운하라는 글로벌 물류의 핵심 동맥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미군의 압도적인 전력 투사로 작전은 불과 한 달 만에 종료됐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조기에 해소되면서 금융시장은 이를 단기적인 국지전으로 인식했다. 노리에가 체포 직후 친미 정권이 수립되고 운하 운영권이 안정되자, 위축됐던 무역 및 물류 관련 섹터는 빠르게 정상화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파나마 사례와는 양상이 달랐다. 미국은 WMD(대량살상무기) 제거와 독재 타도를 명분으로 대규모 정규전을 감행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군사적으로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후세인 잔당의 게릴라식 저항과 종파 간 내전이 이어지면서 치안 공백이 장기화됐고, 핵심 석유 생산 시설들은 파괴되거나 방치됐다.
이라크 사태 당시엔 전쟁 전부터 고조된 불확실성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주가는 하락하는 전형적인 위험 회피 장세가 나타난 바 있다. 침공 개시와 함께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 주가는 반등했으나 에너지 시장은 달랐다. 산유국에서의 정권 교체가 원활하지 못하고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원유 공급 차질이 지속됐다. 이는 유가가 장기간 상승하는 '슈퍼 사이클'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하 연구원은 "현재 베네수엘라 사태는 전개 과정만 놓고 보면 1989년 파나마 침공과 흡사하다"면서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은 파나마 노리에가 때와 마찬가지로 '마약 및 범죄'에 초점을 맞춘 사법적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전면전보다는 특수 작전을 통한 지도부의 '핀셋 제거'를 목표로 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잠재적 파급력은 이라크 수준"이라며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최대 규모로, 만약 상황이 악화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미칠 충격은 파나마 운하 봉쇄 위협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결국 향후 사태의 관건은 '마두로의 퇴진과 정권 이양 과정이 노리에가처럼 신속할 것인가, 아니면 후세인처럼 지루한 내전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가늠할 핵심 선행 지표는 베네수엘라 군부의 이탈 속도와 조기 투항 여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 베네수엘라 사태, 장단기 전망은...
하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시장의 관심은 공포 심리가 가격에 얼마나 선반영됐는지에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이미 국가 부도(Default) 상태이므로, 베네수엘라 국채보다는 인접국인 콜롬비아나 브라질의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과 통화 가치 변동을 리스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CDS 프리미엄 및 환율 동향을 분석해 볼 때 시장은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의 리스크를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1989년 파나마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사태 발발 전후로 국제유가는 수급 불안 심리에 20% 가까이 급등했던 전례가 있다.
그는 "사태 초기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인접국 통화 약세와 유가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여전히 잔존한다"고 평가했다.
장기적 관점에선 '긍정적 시나리오(파나마)'와 '부정적 시나리오(이라크)' 모두를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선 긍정적인 시나리오로는 마두로 대통령 체포 이후 군부가 신속히 투항하고 과도 정부가 들어서며 민주적 정권 이양을 선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하 연구원은 "이 경우 미국은 파나마 운하 정상화 때처럼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즉각 해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네수엘라의 현재 산유량은 100만배럴/일 수준으로 세계 생산의 1%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반 320만배럴/일을 생산했던 능력을 감안하면 증산 여력은 충분하다. 다만 오랜 기간 경제 제재로 인프라가 노후화됐다. 여기에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의 대부분이 오리노코강 유역에 위치해있다. 초중질유의 채산성 문제와 카리브해와 먼 지리적 문제로 단기간 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기 어렵다.
그는 "국제유가가 단기에 급락하기보다 공급 과잉에 대한 경계감이 시장을 지배하며 유가의 상단을 제한하고 꾸준한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라며 "최근 2% 후반에 형성된 소비자물가를 더욱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연준의 금리 인하 정책 여력을 제공해 주식 및 채권 등 자산가격 전반에 긍정적 환경을 조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부정 시나리오인 이라크 모델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 연구원은 "마두로 친위대가 게릴라전으로 전환하고 군부가 분열되며 석유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파괴 및 공작)이 발생할 경우 공급 쇼크 속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 후 수년 간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었던 것처럼 베네수엘라의 생산 설비 복구가 지연되고 치안 불안으로 외국 자본 유입이 차단될 수 있다. 국제유가는 반등 압력을 받을 수 있다"면서 "다만 현재 베네수엘라산 원유 비중이 1%로 낮고 주요 수출처가 중국 등으로 한정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이라크 전쟁 때와 같은 슈퍼사이클 급 폭등 가능성은 제한적이나 신흥국 리스크의 전이 가능성은 남아있다"면서 "남미 전체의 지정학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하면서 남미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했다.
국제 자본시장에서도 안전자산인 미국채와 달러화로 쏠림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