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주 월요일부터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놀라운 규모로 매수한 뒤 시장의 인하 기대감이 커지더니 결국 기준금리가 3%로 인하됐다.
이날 한국은행 금통위는 4:2로 기준금리를 3.25%에서 3.00%로 25bp 인하했다.
당연직 금통위원인 유상대 한은 부총재, 그리고 10월 금통위에서 동결 소수의견을 냈던 장용성 위원이 금리 동결을 주장했다.
시장은 이제 '중립수준 이하'의 기준금리를 보고 갈 채비를 갖췄다.
■ 외국인의 완승...동결 예상한 딜러들은 "총재, 백기투항에 허망"
최근 금리인하 기대감을 띄운 주체는 누가 뭐래도 외국인이다.
지난주 월요일(18일)부터 전일까지 8거래일 동안 3년 선물을 7만 7,576계약, 10년 선물을 5만 3,350계약 순매수했다. 이 기간 3년과 10년 선물 일평균 순매수 규모는 각각 9,697계약, 6,669계약에 달할 정도로 크다.
이날 금통위 당일 외국인은 3년 선물 위주로 선물을 대거 매수하는 중이다.
금융시장에선 기준금리 동결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27일 기준 코스콤의 'CHECK 기준금리 폴'에 의하면 설문에 참여한 금융시장 관계자 936명 중 741명(79.2%)이 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여전히 다수는 그간 '금융안정'을 강조했던 한은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25bp 인하 예상도 191명(20.4%)에 달해 '11월은 거의 동결'로 봤던 꽤 많은 사람들이 전향했다. 그리고 이 전향이 옳은 결정이었다.
A 증권사 채권 딜러는 "지난주부터 외국인이 선물을 대놓고 질러서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국내는 긴가민가 했는데, 그럼에도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봤다"면서 "결국 총재의 금융안정 강조는 노이즈였고 외국인이 완승했다"고 평가했다.
A 딜러와 같은 평가는 많았다.
B 딜러도 "한은 총재 발언을 흘려듣고 최근 물가와 경기 흐름만 생각했어야 했다"면서 "한은 총재는 '조건부'라고 변명했지만 원래 통화정책이라는 게 조건부인 것은 모두가 안다. 총재가 아니라 (선물을 대거 지른) 외국인을 믿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한은의 '흑역사'를 되짚는 모습도 보였다.
채권시장에서 오랜기간 일한 C 증권사 관계자는 "역대 한은 총재를 25년간 겪어 왔다. 한국 채권투자자들이 가져야 할 기본자세는 총재 말을 무시하는 게 몸에 좋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은 총재 말을 듣고 이를 분석해서 매매하면 결국 필패"라며 "한국 중앙은행은 꼭 결정적일 때 자기나라 시장의 채권딜러들에게 엄청난 패망감을 안긴다"고 했다.
그는 "한은보다 정부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2년반 동안 한 게 없는 윤석열 정부의 후반부는 성장에 매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에도 채권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성장에 목마른 정부가 내년에 대규모 추경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한은 총재의 '소음'...일부 과격한 평가들도
한은 총재가 포워드 가이던스의 '조건부'를 말했지만,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선 가이던스가 오히려 투자자들 예상만 망쳤다는 격앙된 평가도 나왔다.
어차피 통화정책이란 게 '정해진 게 아니니' 총재의 '조건부'라는 변명(?)에 화가 난 투자자도 보였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한은이 (선물 대량 매수한) 외국인에게 제대로 서비스를 하고 국내 투자자들에겐 엿을 먹였다"고 비난했다.
그는 "총재가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지, 제대로된 신호는 아무것도 못 준 셈"이라며 "이럴 것이라면 포워드 가이던스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 잘못된 신호(포워드 가이던스 상 내년 1월까지 동결)를 줬다고 했다.
이 딜러는 "금리 한번 내려 성장률 7bp 올리기 위해 이렇게 무의미하게 정책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총재가 재정 역할을 강조해 왔는데, 자기만 금리를 의미없이 2번 연속 내린 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번 포워드 가이던스에선 향후 3개월 금리 동결 의견이 3명, 인하를 열어두자는 의견이 3명이었다.
채권시장에선 또 한은이 예전의 버릇, 즉 '정부의 의중에 맞추거나 아부하는 결정'을 한 것이란 비난도 보였다.
E 증권사 딜러는 "한은 총재들이 엉뚱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을 믿어준 시장을 배신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이창용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소통을 강조하더니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해준 것으로 본다"면서 "답이 없는 정부 경제정책에 금리라도 내려서 심기를 살펴야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 이제 할 일은...최종 기준금리 '중립 이하'로 낮추고 더 압박하기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9%, 내후년은 1.8%로 제시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내년과 내후년 모두 1.9%로 제시했다.
이전 전망에 비해 성장률과 물가를 대략 0.2% 가량 낮춘 가운데 투자자들은 기준금리 종착역이 '중립 이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강화하는 중이다.
F 운용사 매니저는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돈다는 게 정설이 돼 버렸다"면서 "이전까지 많은 투자자들이 기준금리 터미널레이트로 봤던 2.50~2.75%가 하향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정책금리가 2.00~2.25%까지 갈 가능성까지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G 딜러는 "일단 2월까지 기준금리가 2.75%(1월 혹은 2월 중 추가 인하)까지는 간다고 볼 수 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최종금리는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2.50%는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강세 분위기가 과열돼 있다면서 최종금리 2% 등을 보는 것은 과하다는 평가도 보인다.
D 딜러는 "냉정하게 볼 때 현재의 시장 분위기는 지나치다. 향후 기준금리를 2.5% 밑으로 내린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