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민의 채권포커스] 건전재정 내세운 총리 쫓아낸 프랑스인들...프랑스 등급 강등과 금리 상승의 여파는
장태민 기자
기사입력 : 2025-09-15 11:38
[뉴스콤 장태민 기자]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과 국채 금리 상승이 글로벌 금리에 얼마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지 주목을 끌고 있다.
신평사 피치는 현지시간 12일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다만 향후 등급 전망은 ‘안정적’을 부여했다. 피치는 프랑스의 정치와 재정 불안전성을 강등의 사유로 적시했다.
피치는 보고서에서 "프랑스 정부의 불신임 표결 패배는 국내 정치적 분열과 양극화가 심화됐음을 보여준다"며 “이러한 불안정성이 정치 시스템의 재정 건전성 확보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주 후반 프랑스 재정전건성에 대한 우려로 유럽 국채시장 전반에 불안이 확산되는 모습도 나타났다.
최근 영국, 프랑스 등의 국채발행이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럽 금리가 뛰자 미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기도 했다.
코스콤 CHECK(3931)에 따르면 12일 프랑스 국채10년물 수익률은 13.42bp 급등한 3.5082%를 기록했다.
이제 프랑스 금리가 이탈리아와 비슷해졌다. 이탈리아 10년물 금리는 6.61bp 상승한 3.5216%를 나타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 등급 강등 이슈는 각국 국채금리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독일10년물은 5.62bp 오른 2.7116%, 영국10년물은 6.58bp 상승한 4.7585%를 나타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4.00bp 오른 4.0660%에 자리했다.
■ 프랑스인들 '긴축 싫다'
피치의 프랑스 등급 강등은 정부 긴축 정책에 반발한 ‘국가 마비’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발표된 것이다.
바이루 전 총리가 7월 정부 지출 동결과 공휴일 축소를 포함한 긴축 패키지를 발표한 이후 여와 야, 그리고 시민들 상당수가 반발했다.
급기야 SNS를 통해 "9월 10일 나라를 멈춰 세우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뒤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바이루 전 총리는 지난 7월 공휴일 축소, 복지·연금 지급액 동결 등을 포함한 440억 유로 규모의 긴축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GDP의 6%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2029년까지 3% 아래로 줄이려는 조치였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바이루의 '건전재정 회복 호소'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이후 의회 불신임 표결로 사퇴한 바이루 전 총리의 후임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최측근인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자 시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리 시위로 번졌다.
그러자 르코르뉘 신임 총리는 13일 프랑스 매체 인터뷰에서 "내년 예산안에 공휴일 폐지 계획은 넣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싶다. (공휴일 폐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긴축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그 대안으로 정부 기구 통폐합, 지방 정부의 재정 자립도를 높일 분권화 추진, 전직 고위 공직자의 불필요한 특권 폐지 등을 언급했다.
■ 프랑스 전 총리 "엘리트들이 국민 눈 가리는 나라는 대가 치른다"...프랑스, 고통없이 재정건전성 해법 찾을 수 없어
르코르뉘 프랑스 신임 총리는 더 효율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해법을 찾기 만만치 않아 보인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8%로 유로존 평균(약 3.1%)을 크게 웃돌았다.
정부 부채는 GDP의 113%를 넘어 그리스·이탈리아에 이어 유로존 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마크롱 2기 행정부가 2년도 안 돼 총리를 네 차례 교체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재정 긴축을 둘러싼 해법을 못 찾고 있다.
피치는 "향후 몇 년간 정부 부채를 안정화할 명확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 부채가 2024년 GDP 대비 113.2%에서 2027년 121%로 상승할 것"이라고 했다.
국가 혼란을 본 뒤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사실상 쫓겨난 바이루 전 총리는 뼈 있는 말을 했다.
실각한 바이루 전 총리는 SNS를 통해 "엘리트들이 진실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나라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좌파, 우파 가리지 않고 여러 정당이나 정치인 등은 바이루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바이루 정부 퇴진을 주도한 사회주의 정당 ‘굴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새 내각까지 압박했다.
LFI는 "새 정부 역시 시장 종속적 긴축정책을 택한다면, 예견된 재앙을 맞이해 국가를 경제·사회·생태 위기로 더 깊이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유로존 4위 경제국 스페인, 이 지역 재정 모범국 될 날이 올 줄이야
프랑스 신용등급이 내려왔지만 스페인은 반대로 올라갔다.
신평사 S&P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은 유로존 4위 경제국가인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S&P는 12일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한 단계 높힌다고 밝혔다. 단기 신용등급 A-1은 그대로 유지했으며, 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S&P는 "스페인은 지난 10여 년간 민간부문 부채 축소를 통해 대외수지 구조가 개선됐다. 이로써 스페인 경제가 외부 자금조달 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덜 취약해졌다"면서 "경기 충격에 대한 회복력도 강화됐다”고 밝혔다.
S&P는 스페인의 2025년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이는 유로존 평균의 세 배에 달할 정도로 높은 것이다.
스페인 성장은 과거 구조조정과 개혁 효과, 활발한 투자 활동, 라틴아메리카 출신을 중심으로 한 이민 유입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요인들은 고용 증가와 내수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S&P는 "스페인의 서비스 중심 경제 구조와 미국 무역에 대한 제한적인 노출은 미국발 상품 관세의 즉각적 영향을 완화한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지난 12일 유럽 국가들의 금리가 뜰 때 스페인 10년물 금리도 4.75bp 상승한 3.2238%를 나타냈다. 10년 금리 레벨은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낮다.
■ 프랑스 재정건전성 우려의 전염 가능성은...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그리고 국채금리 상승 문제는 다른 유럽국이나 서방국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슈라는 평가도 제기된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프랑스 사태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 캐나다 등 다른 국가들에게 미칠 영향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채권시장, 특히 국채의 경우 최근 시장금리 동향에 국가의 재정 여건과 관련된 이슈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실 한국을 포함해 상당수 국가들의 채권시장에선 재정 건전성과 채권 공급 확대 문제를 공히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와중에서도 장기 금리가 못 내려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기준금리 인하되는 사이클에 있었지만 채권 발행 증가, 국가 신용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작용한 것이다.
또 지난 2012년 PIGS 사태 당시 재정위기국들의 금리가 뛸 때 미국채 시장이 안전선호로 반사익을 취해 지금은 미국 재정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는 진단도 나온다.
공 연구원은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다른 국채시장에서의 동요나 금리 반등은 미국 국채금리가 추세적인 하락세를 나타내더라도 그 속도가 더딜 것이란 전망을 강화하는 논거"라고 했다.
다만 이번주 미국 FOMC의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유럽 재정 사태에 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조언도 보였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에 미국시장도 다소 영향을 받았지만 이번주 관건은 FOMC"라며 "미국의 25bp 인하가 확실한 가운데 보우먼, 월러 등이 50bp 인하도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여서 미국발 통화 완화는 채권투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