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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80불 육박한 WTI와 셰일의 수급 안전판 역할

장태민 기자

기사입력 : 2024-02-20 14:03

자료: WTI 선물가격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자료: WTI 선물가격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뉴스콤 장태민 기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이 80불에 바짝 붙었다.

최근 원유 가격은 중동 긴장 재고조, 위험자산 선호 등을 발판 삼아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79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부터 WTI는 60불대 후반에서 추가 하락이 막혔으며, 최근 다시 상승세를 확대하고 있다.

WTI는 올해 1월 2일 70.38달러로 시작해 2월 16일 현재 79.19달러까지 올라왔다. 올해 들어 유가는 70불 대에서 등락하면서 추가 상승 룸을 가늠하는 중이다.

하지만 최근 중동사태, 석유 카르텔 OPEC+ 공급량 제어 등에도 불구하고 '재료 대비' 유가의 상방 역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최근 수년간 수급 구도상의 큰 변화도 있었다.

미국 셰일업체들이 원유 공급자로서 큰 힘을 발휘하면서 과거와 같은 극심한 가격 진폭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원유시장의 붐-버스트(boom-bust) 사이클이 과거처럼 격렬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도 보인다.

과거의 '유가 급등 → 시추활동 급증 → 원유생산 급증 → 국제유가 급락 → 시추활동 급감'이라는 짧고 격렬한 사이클이 셰일업체들에 의해 이제 '길고 완만하게' 변화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미국은 사우디, 러시아 크게 웃도는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

작년 12월 15일 미국 원유생산은 1,330만 배럴을 기록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2020년 3월 13일에 기록한 이전 최대치인 1,310만 배럴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연간으로 일평균 1,292만 배럴을 생산해 2019년의 1,231만 배럴 기록을 경신했다.

이같은 생산규모는 사우디와 러시아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OPEC+를 이끌고 있는 두 나라는 각각 일평균 960만배럴 내외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셰일업계가 주도하고 있다. 미국 원유 생산에서 셰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70%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셰일 오일은 미국이 원유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다.

2012~2015년 1차 셰일붐 때 미국 원유생산은 일평균 553만 배럴에서 956만 배럴로 급증했다. 이후 2016년~2020년초 2차 셰일붐 때는 847만 배럴에서 1,310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2021년 3차 붐이 시작된 뒤부터는 970만 배럴에서 최근 1,320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2021년 10월 이후 원유 순수출국이 됐다. 미국 원유수출은 2021년 일일 기준 300만배럴 수준에서 작년 11월초엔 489만배럴로 급증하기도 했다.

■ 셰일 혁명 초기, 미국 굴복시키는 데 실패한 원유 카르텔

미국은 2010년대 셰일 혁명을 통해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원유 생산량 1위 국가가 됐다.

미국은 2018년 원유 생산 1위 달성 후 2020년대 들어 순수출국으로 변신했으며, 이제 사우디-러시아가 주도하는 원유 카르텔의 위협을 막는 전사가 됐다.

사실 사우디는 셰일 혁명 초기 미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미국이 과거에는 꿈 꿀 수 없었던 퇴적암층(셰일)에서 에너지원을 뽑아내 2014년 중반부터 유가가 하락하자 사우디는 아예 생산량을 더 늘려 다른 산유국과 미국 셰일업체를 동시에 타격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이 전략은 미국 셰일 업체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으나, 미국 셰일업계는 기술 발전을 통해 죽지 않고 살아났다.

사우디는 원유 생산단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워낙 낮아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만, 장기간 이 전략을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사우디의 문제는 국가 재정이 원유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 구조라는 점이었다.

■ 미국 기술발전이 변화시킨 원유수급 구도...셰일업체들, 유가 60불대 중반 이상이면 이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OPEC+의 감산 등 과거 같으면 유가를 크게 올렸을 법한 수급 이벤트에도 유가가 예상보다 뛰지 못한 데는 셰일의 수급 효과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미국 셰일업체들의 손익분기점은 50불대 중반~60불대 중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지금 수준의 유가가 급락하지 않는다면 업체들의 생산 유인은 여전히 충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22년 WTI 평균가격은 68달러, 작년엔 78달러 수준이었다. 최근 유가가 하락할 때도 손익분기점보다 높은 지점에 있어 셰일 원유 생산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 다이나믹하게 셰일 원유 생산을 늘릴 수 있었던 때는 기술 발전이 큰 몫을 했다.

미국의 원유 탐사 기술, 그리고 시추 기술 발전이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가격이 하락할 때도 생산 급감을 피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아울러 기술과 자본이 모두 뛰어난 엑슨 모빌 같은 대형업체들이 셰일 원유 생산 증대을 견인해 보다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들도 보인다.

■ 미국, OPEC+ 카르텔의 더 위협적인 경쟁자로 변신

미국 셰일붐은 글로벌 원유공급 안전판으로서 지정학적 리스크, OPEC+ 감산에 따른 국제유가 상방압력을 완화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산유국 간 생산경쟁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OPEC+의 감산을 통한 유가 끌어올리기 전략은 결과적으로 셰일업체들의 생산 욕구를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지난해 말 앙골라의 OPEC 탈퇴 선언 등에서 보듯이 미국의 강화된 수급 영향력은 산유국 카르텔 내 이탈자도 양산해 낼 수 있다.

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 그리고 러시아 중심의 유가 띄우기가 과거보다 더 어려워진 것이다.

앙골라가 작년 말 2007년 OPEC에 가입한지 17년 만에 이탈을 결정한 이유는 사우디의 석유 감산에 대해 불만 때문이다.

물론 최근 수년 동안 여러 차례 회의에서 항의하면서 퇴장한 이력이 있는 '문제아'의 이탈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할 것까지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OPEC+ 내의 생산량 할당 문제와 관련해 불만도 적지 않았다.

특정 산유국의 이탈 조짐을 OPEC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것은 아니지만, 사우디-러시아 양강 구도가 이끄는 이익집단의 힘은 최대 원유 생산국 미국에 의해 약화됐다.

■ 유가 상승 전망과 한계

올해 하반기 원유 수요 회복으로 유가가 더 오를 것이란 시각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또 미국의 원유 생산이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생산량 증가 '모멘텀'이 둔화되는 부분도 무시하긴 어렵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 원유 생산이 일일 1,321만배럴, 내년엔 1,344만배럴를 기록해 3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증가폭 자체는 23년(101만배럴)보다 둔화돼 올해는 29만배럴, 내년엔 23만배럴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증가 추세는 이어지지만 모멘텀은 둔화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최근 60불대 후반에서 유가 추가 하락도 여러 번 막혔다.

또 최근 70달러선 유가에서 나타난 미국 중심의 정제마진 개선, 원유 재고 감소세는 원유 선물 백워데이션 상태를 지속시켜 유가의 하방경직성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들이 나오기도 했다.

유가의 하방경직성과 수요 회복 등에 무게를 두는 쪽에선 유가가 다시 100불 근처로 오를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WTI는 지난 해 3분기 말까지 배럴당 100달러에 근접했다가 4분기에 70불 아래로 미끌어졌다. 이후 작년 12월 바닥을 찍고 다시 오르면서 재차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가격 상승 각도는 이전의 상승·하락에 비해 둔탁해졌다.

아울러 미국 셰일 오일 수급이 가진 위세를 여러 번 확인한 탓에 상승폭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점 역시 무시하긴 어렵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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