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연계가 과거 냉전기와 같은 전면적인 블록화로 이어지기보다는 제3국을 매개로 재편되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등 아세안 생산망을 통해 미국과 중국 양쪽의 최종수요와 연결되는 정도가 모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미국이 원산지 규정이나 우회수출 조사를 강화하면 아세안 현지 생산을 거쳐 국내 기업과 중간재 수요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11일 이슈노트 '지정학적 분절 속 글로벌 경제연계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한은은 미·중 갈등과 러·우 전쟁 등 지정학적 긴장에도 글로벌 교역이 과거 냉전기와 같은 전면적 블록화로 이어지지 않고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이 UN총회 표결자료를 활용해 2017년 이후 각국의 대미·대중 관계 변화를 분석한 결과, 다수 국가는 정치·안보 등 지정학적 측면에서는 미국 쪽으로 가까워진 반면 경제·개발 등 지경학적 측면에서는 국가와 지역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디커플링(decoupling)' 경향을 나타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직접 교역이 줄어드는 과정에서는 베트남과 인도, 멕시코 등 이른바 '커넥터 국가(connector countries)'의 역할이 커졌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최종시장과 중국 중심 생산망에 동시에 긴밀하게 연결돼 미·중 간 직접 교역 감소에도 양측의 경제적 연결을 이어주는 중간 거점으로 기능했다. 최근에는 단순한 제3국 경유를 넘어 현지 생산과 외국인직접투자(FDI)가 함께 확대되면서 실제 생산거점으로서 기능도 강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의 공급망에서도 이런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은이 2016~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산업연관표(ICIO)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에서 창출된 부가가치 가운데 최종적으로 미국의 소비·투자 등 최종수요로 연결된 비중은 **2016년 11.1%에서 2022년 18.5%**로 7.4%포인트 상승했다.
중국 최종수요와 연결된 비중 역시 같은 기간 **7.3%에서 13.9%**로 6.6%포인트 높아졌다. 즉 베트남을 생산거점으로 활용하면서 한국의 수출 부가가치가 미·중 양쪽 시장과 연결되는 정도가 동시에 강화된 셈이다.
특히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에서 이런 흐름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대베트남 해당 업종 수출에서 미국 최종수요로 연결되는 부가가치 비중은 2016년 12.8%에서 2022년 21.0%로 상승했다. 중국 최종수요와 연결되는 비중도 11.2%에서 19.4%로 높아졌다.
미국 최종수요에 연결되는 한국 부가가치의 경로에서도 중국의 역할은 줄어든 반면 아세안의 역할은 확대됐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연결되는 비중은 2016년 73.1%에서 2022년 72.4%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산 중간재가 제3국 생산기지를 거쳐 미국 최종수요로 이어지는 간접경로를 보면 중국 경유 비중은 10.7%에서 6.8%로 낮아진 반면 베트남 등 아세안5 경유 비중은 4.9%에서 8.3%로 상승했다.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에서는 변화가 더욱 컸다. 2022년 아세안5 경유 비중이 18.6%까지 상승하면서 중국 경유 비중 17.0%를 넘어섰다.
투자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의 미국 직접투자가 크게 확대되는 동시에 베트남 등 기존 아세안 생산거점에 대한 투자가 지속됐다. 한은은 이를 한국 기업들이 미국 최종시장에 직접 진출하면서도 커넥터 국가의 생산망을 함께 활용하는 전략을 병행한 결과로 평가했다.
한은은 이 같은 변화가 지정학적 분절에도 국가 간 경제연계가 단절되기보다 기존 글로벌 공급망 경로가 재구성되는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기존 아세안 생산망을 활용해 미국과 중국 양쪽 시장과 연결을 유지한 것이 지정학적 충격 발생 시 생산·수출 경로의 선택지를 확대하고 공급망 회복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아세안을 통한 연결이 확대된 만큼 새로운 위험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원산지 규정이나 우회수출 조사 등 공급망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경우 그 영향이 아세안 현지 생산을 거쳐 한국 기업과 국내 중간재 수요까지 파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커넥터 국가를 통한 완충 기능을 활용하는 동시에 주요국의 정책 변화나 현지 생산여건 변화 및 공급망 충격이 제3국 생산망을 통해 국내로 파급될 가능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며 특정 생산거점이나 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