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29일 정부는 내년 예산안(총지출)을 8.1% 늘어난 728조원으로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재정이 마중물 역할로 성장과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총지출 증가율은 대폭 상향했다고 설명했다.
본예산 기준으로 2025년 예산이 2.5% 늘어난 뒤 2026년엔 8% 넘게 급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시장조성용 및 차환 발행을 제외한 국채 순발행 규모는 116조원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영향이 작용했던 2021년(120.6조원) 이후 최대다. 이 중 부진한 세수가 재정지출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일반회계 세입 부족분 보전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적자국채는 110조원이다.
■ 가파르게 늘어나는 한국의 국고채 발행 규모
정부는 내년 국고채 발행 규모 232조원을 제시했다.
이는 2025년 본예산 기준 197.6조원 대비 34.4조원 증가한 것이다. 추경을 포함한 기준으로는 4조원 가량 증가했다.
1년전 예산안 발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번 발표를 보면서 크게 우려하기도 했다.
'건전재정'을 지향한다던 윤석열 정부조차 대규모 국채 발행을 피해가지 못한 가운데 '큰 정부'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가 등장하면서 빚은 계속 늘어만 간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작년 8월 하순 정부는 2025년 국고채 발행규모에 대해 2024년(158.4조원)보다 42.8조원이 늘어난 201.3조원이라고 발표해 사람들을 놀래킨 바 있다. 당시 국채 발행이 대폭 늘어났던 것은 2024년 나라살림을 짜면서 돌려막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당시 정부는 적자국채 순증규모는 2024년의 82조원에서 87조원 수준으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이후 올해는 추경으로 이미 230조원 가까운 국채를 발행하게 됐으며, 내년엔 이번 '본예산'만으로도 적자국채가 100조원을 훌쩍 넘게 됐다.
■ 예상 수준의 빚 증가...정부 말대로 '선순환 구조' 못 만들면 한국 재정 위험해져
금융시장은 이재명 정부라는 '큰 정부'가 들어선 만큼 대규모의 예산안 증가가 불가피하고 그에 따라 국가 채무도 크게 늘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왔다.
최근 정부 관계자 등이 730조원 수준의 예산을 거론한 가운데 시장은 230조원 내외의 발행 전망에 대비해 왔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번에 마중물을 통해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다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예산안 발표 뒤 "지금이 AI 대전환과 구조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이어서 재정을 성장 마중물로 활용해 중장기적 세입 기반을 확충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금융시장 등에선 정부가 우려한 것처럼 예산을 너무 크게 잡았다는 비판도 내놓고 있으며, 일부에선 정부가 공언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한국이 신용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시장이 예산안, 그에 따른 국채발행에 대해 예상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도로 한국 정부는 다시 위험한 나라살림에 돌입했다"면서 "구윤철 장관이 대규모 예산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장관의 순진한 헛소리로 들린다"고 폄하했다.
그는 "개인적으론 이번 예산이 경기 회복 마중물이 되기 보다는 한국을 재정 위기국으로 만드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 여·야 정반대 목소리...여당 "이번 대규모 재정은 건전재정 이끄는 마중물"...야당 "방만한 재정운용에 한숨만"
정부의 예산안 발표 뒤 여당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여당은 지금은 비상한 시기인 만큼 돈을 무조건 아끼려고 해선 안 된다면서 정부 정책을 강력히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1일 "2026년 예산안 728조는 민생 회복의 마중물이며 대한민국 재도약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말대로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야 할 때'라며 대규모 예산편성을 극찬했다.
김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은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 AI 등 첨단기술 육성, 기후위기 대응, 민생경제 회복에 투입되는 든든한 씨앗이 될 것"이라며 "여당은 성과 없는 사업은 구조조정 하고 불요불급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면서 민생경제 회복과 국민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사업은 최우선 투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R&D 예산은 반드시 확대하겠다. 또 미래에 대한 투자는 단 한 치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면서 "재정 집행의 불공정과 지역·계층 간 불균형을 철저히 막을 것이며,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세수 결손도 바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적극재정→성장→지속 가능한 재정’의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야당은 정부의 2026년 예산안을 '위험한 불장난'으로 평가했다.
특히 기재부 예산담당 차관 출신인 송언석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과 관세협상 결과를 감안할 때 한국 경제의 미래가 크게 우려된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1일 " 먼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국가채무가 단 1년 만에 142조원이나 증가해서 1,415조원을 넘어서게 됐다"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최초로 50%를 넘어서 51%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하기는 더 힘들어지고, 세금은 더욱 거두기 힘들어지는데, 지출만 급증하는 방만한 재정 운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합의문조차 없었던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국가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6천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만 받아 왔다. 한국돈 832조원이면 국민 1인당 약 1,600만원에 달한다. 지난번 추경을 하면서 국민에게 나눠준소비쿠폰이 1인당 15만원에서 55만원사이였다. 이 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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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투자자들은 내년 물량 소화 가늠..."올해의 경험과 내년 WGBI 편입 감안시 무난"
채권 투자자들 사이엔 지난주 예산안에 따른 국채 발행 정도는 소화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일단 올해 대규모로 늘어난 국고채를 소화한 경험이 있는 데다 WGBI 요인까지 있기 때문이다.
B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내년 국채 물량은 중립으로 보고 있다. 내년 국고채 발행이 늘긴 해도 추경을 더해서 계산한 올해 수준"이라며 "여기에 WGBI까지 있으니 부담이 되는 양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발행 규모는 일단 예상치에 부합한다. 다만 내년에도 추경을 한다거나, 여기서 더 늘어나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일부에선 물량 부담이 크지만 'WGBI가 살렸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으며, 다른 쪽에선 우려했던 규모에 비해선 오히려 작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C 증권사 딜러는 "WGBI가 없었다면 물량 부담이 상당히 컸을 것이다. WGBI가 없었다면 금리 폭등 재료로 볼 수 있었다"면서 "예컨대 4월부터 11월까지 매달 10조원 정도는 외국인이 사주니 이게 뒷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 정부의 행태를 봤을 때 내년에 또 추경을 하려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재정 확대에만 올인하면 결국 재정위기 발생으로 제2의 IMF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이 건전재정으로 복귀하기 위해선 '정부가 장담하는 대로' 씨앗이 제대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란 지적도 보인다.
D 운용사 채권매니저는 "내년 국채발행 규모는 걱정한 것보다는 작고, 할 만하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내년에 추경을 또 하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추경을 하더라도 WGBI가 있으니 대략 올해와 비슷한 정도의 느낌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발행규모는 절대량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한번 맞아본 매 느낌이다. 그래서 무난하다"면서 "다만 돈을 빌려서라도 씨앗을 뿌려야 된다고 하는데, 나중에 씨앗 이자 쳐서 갚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씨앗이 아니고 콤바인까지 빌릴 사람들이 더 많아 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