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세계적인 경제학자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채권시장의 금리 상승 압력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체르노비오에서 열린 암브로세티 포럼에서 CNBC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에서 즉각적인 재정 건전화에 나서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따라서 국채금리에 대한 상승 압력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의 배경으로 인플레이션이나 중앙은행 정책에 대한 신뢰 문제보다는 채권시장의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지목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문제는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며 "전통적으로 미국 국채를 안정적으로 사들이고 보유해왔던 매수자들의 신뢰도와 수요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이 지정학적 이유로 과거만큼 미국 국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과 걸프 국가들 역시 국내 문제에 직면해 있어 해외 국채 매수 여력이 과거와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미국 국채 투자 비중을 재검토하고 있는 점도 언급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규모 자체가 반드시 큰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보유자와 매수자들을 안정적인 수요처로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채권 공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국 정부와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발행하는 채권 규모를 보면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매수 규모를 훨씬 웃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국채금리에 압력을 가해온 이유"라며 "최근 금리 상승은 인플레이션이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신뢰성 등 지금까지 거론돼온 다른 요인보다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과 훨씬 더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영국과 일본, 프랑스가 국채시장 불안에 특히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영국에 대해서는 미국 금리 움직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이베타(high-beta) 국가'라고 표현했다.
그는 "미국 금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영국 금리는 훨씬 더 크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과거 재정위기 때 주요 우려 대상이었던 이탈리아보다 최근에는 프랑스가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과거에는 이탈리아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국채가 프랑스 국채보다 낮은 금리에 거래되고 있다"며 "시장의 초점이 유로존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국 가운데 하나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의 국채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미 재무부는 최근 장기 국채금리가 수십년 만의 높은 수준으로 오르자 장기물 국채 바이백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이에 대해 재무부가 단순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을 넘어 원하는 시장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는 단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를 "한 걸음 너무 나간 것(a step too far)"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 국채시장은 엄청나게 큰 시장"이라며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부수적인 피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시장 결과를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최근 장기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머무를 경우 금리 위험이 신용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경계했다.
그는 앞서 자신의 엑스(X)를 통해 "금리가 더 높은 수준에서 오래 머물수록 시장은 금리 위험이 신용 위험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더욱 크게 우려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과 가계의 차입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결국 채무상환 부담과 신용여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최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제시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엘-에리언 고문은 워시 의장이 자신의 통화정책 반응 함수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 답하고 과도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경계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인공지능(AI)을 공급 능력과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생산요소로 평가한 점을 주목했다.
그는 "이 부분이 가장 적은 관심을 받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장 중요하다"며 AI가 경제의 공급 측면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