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뿐 아니라 이를 탑재한 노트북과 데이터센터 서버 등 완제품까지 대상으로 하는 전면적인 관세 부과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7일(현지시간) 관계자 8명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의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토 대상에는 반도체 자체뿐 아니라 노트북,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용 서버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다양한 완제품이 포함될 수 있다.
지난 1월 관세 예외 대상에 포함됐던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R&D), 스타트업, 소비자용 애플리케이션 관련 제품까지 관세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별로 관세율과 할당량(쿼터)을 별도로 설정하고 주요 반도체 제조사에 국가별 지침을 적용하는 방식도 아이디어로 거론되고 있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의 유예를 두고 새로운 관세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폴리티코는 이번 구상이 향후 수개월 동안 상당 부분 수정될 가능성이 있으며 미 상무부 당국자들도 아직 정확한 관세율과 세부 적용 방식 등을 확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검토하는 관세 정책의 핵심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생산 투자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외국 기업에 대한 관세 감면 혜택을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외국 기업이 일정 물량의 반도체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도록 허용하되 무관세 수입 규모를 해당 기업이 향후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 약속한 물량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미국 내 생산능력을 많이 확보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기업일수록 더 많은 물량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해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려는 구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일부 첨단 반도체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면서 적용 범위를 향후 확대할 가능성을 예고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 등 미국으로 수입된 뒤 다른 국가로 재수출되는 일부 첨단 반도체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당시 백악관은 향후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와 반도체가 포함된 파생 제품에 더욱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하고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지난 5월 반도체에 대한 전면적인 관세 부과가 적절한 시점에 이뤄질 것이라면서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는 일정 규모의 수입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관세 감면을 미국 내 생산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은 지난 1월 미국과 대만이 체결한 무역 합의에도 반영됐다. 대만은 당시 2천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반도체 투자를 약속했고 미국은 대만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췄다.
양국 합의에는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이 계획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규모에 비례해 향후 도입될 수 있는 반도체 관세를 일정 부분 면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세계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TSMC는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새로운 반도체 관세 체계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관세가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결정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의 AI 산업 육성 정책에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경쟁으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높은 관세로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조달 비용이 상승하거나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데이터센터 확장 속도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내 공장 건설을 결정하더라도 실제 생산능력을 충분히 확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으로 지적된다.
폴리티코는 관세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러트닉 장관과 제프리 케슬러 상무부 차관 등을 상대로 관세 수위를 낮추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반도체 제조업의 미국 복귀가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이며 관련 정책을 통해 이미 수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이 반도체 관세의 적용 범위를 완제품까지 확대하고 관세 면제를 미국 내 투자 규모와 직접 연계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AI 데이터센터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