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지난 7월 한국 주식시장은 역대급 변동성을 보이면서 폭락했다.
AI 수익성과 관련한 불확실성, 중국의 반도체 추격 공포 등이 한국 시장을 강타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지대했던 이유로는 흔히 '수급적 요인'이 꼽힌다.
특히 5월 27일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수급 효과가 지대했다.
데일리 리밸런싱(Daily Rebalancing)의 하방 폭주 메커니즘으로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한국 주식시장을 초토화시켰다.
레버리지 ETF는 매일 기초자산 수익률의 2배를 맞추기 위해 장 마감 무렵 ‘일일 리밸런싱’을 진행해 주식시장 낙폭을 더욱 증폭시켰다.
기계적 순응 매도(Pro-cyclical Selling) 메커니즘이 가동하면 ETF 운용사는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기초자산(주식)을 기계적으로 추가 매도하면서 한국 주식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즉 레버리지 ETF 투자자, 신용거래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에서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과 강제 반대매매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한국 주식시장을 구조적 위기로 몰았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난 뒤 또 다른 '해외' 수급 요인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 주식투자자의 레버리지 수급 못지 않게 한국 시장을 뒤흔든 수급이 있었으니, 그것은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였다.
■ 헤지펀더들이 한국시장을 놓고 벌인 전쟁
2026년 7월 31일.
SK하이닉스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았다.
국내 투자자들이 7월 마지막 거래일의 뜬금없는(?) 주가 폭등에 아연실색해 있을 때 미국의 큰손 투자자들은 시타델이 SA 펀드의 물량을 통째로 받아냈다면서 한국물을 마구잡이로 샀다.
7월 하순 SK하이닉스 주가를 무차별하게 짓누르던 원인은 실적이 아니라 SA 펀드의 4배 레버리지 청산(증권사들의 기계적 반대매매)이었다.
이후 30일 밤 시타델이 약 160억 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블록딜로 인수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에 며칠 동안 폭탄처럼 쏟아지던 '기계적 매도 물량'이 100% 소멸됐다는 안도감이 급부상했다.
하락장에 베팅하며 공매도(Short) 포지션을 취했던 헤지펀드들은 더 이상 밀어낼 매물 폭탄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주가가 반등하기 전에 손실을 막기 위해 공매도 잔고를 급하게 되사들이는 '숏커버' 물량이 장 초반부터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주가를 '직각으로' 띄웠다.
한국 주식시장은 7월 말 유례없이 큰폭으로 폭등했다. 이날 SK하이닉스는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한국 코스피지수는 17.91% 폭등했다.
■ 레오폴드 아셴브레너
레오폴드 아셴브레너(Leopold Aschenbrenner)는 2024년 헤지펀드인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 LP)'를 설립했다.
아셴브레너는 1999년생으로 2024년 오픈AI로부터 해고당할 당시 25세에 불과한 청년이었다.
오픈AI는 아셴브레너가 2023년 회사의 보안 정책을 위반하고 내부 보안 관련 문서를 외부 인사(투자자 및 전문가 그룹)에게 공유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했다.
아셴브레너는 해고를 당한 뒤 AI 전문 헤지펀드인 SA를 설립해 AI 승자는 챗봇이 아닌 반도체·인프라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AI투자에 집중해 회사를 키웠다.
■ 아셴브레너의 눈에 들어온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2026년 7월 10일 미국 나스닥에 대규모(약 280억 달러 규모) ADR을 상장시켰다.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SA 펀드는 7월 상장 당시 주요 기관들과 함께 대규모 물량을 받아내는 주요 초기 투자자(Cornerstone Investor)로 참여해 SK하이닉스 ADR 지분을 본격적으로 확보했다.
SA 펀드는 2026년 7월 초 SK하이닉스 ADR 및 관련 AI 하드웨어 종목을 대거 빚으로 끌어모았다. 최대 4배의 극단적인 레버리지(빚)로 이 종목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셴브레너에게 예상하지 못할 불행이 닥쳤다.
7월 하순 AI 반도체 조정 심리, 일부 업체들의 2분기 실적 부진 등으로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도한 빚(4배 레버리지)을 견디지 못한 SA 펀드는 7월 30일 프라임 브로커들로부터 마진콜을 받았다.
이 장면에서 시타델이 등장한다.
■ SA 펀드의 위기와 시타델의 돈 벌기
아셴브레너는 7월 30일 야간에 SK하이닉스 ADR을 포함한 상장 주식 포트폴리오 전체를 시타델(Citadel)에 통째로 넘기는 결정을 하게 된다.
주가가 폭락하자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프라임 브로커들이 SA 펀드에게 '대출 담보 비율이 무너졌으니 당장 현금을 더 내놓으라'고 종용했다.
SA 펀드는 4배나 빚을 내서 주식을 샀기 때문에 추가로 넣을 현금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금융사들이 시장에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반대매매'가 시작될 수 있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시타델이 통매수(블록딜)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시장 전체가 폭락할 것을 우려한 프라임 브로커들과 SA 펀드는, 현금이 풍부한 시타델(Citadel)에게 SA가 가진 약 160억 달러 규모의 포트폴리오 전체를 시세보다 10% 이상 싼값에 헐값 매각(블록딜)해 빚을 청산하는 방법을 택한다.
결국 아셴브레너와 SA 펀드 투자자들은 바닥에 주식을 헐값으로 넘겨야 했다. 이들은 막대한 투자 손실을 봤으며, 해당 포트폴리오는 완전히 청산당했다.
막대한 포트폴리오를 싸게 넘겨받아 빚을 대신 갚아준 시타델은 이후 단 며칠 뒤 주가가 폭등하자 엄청난 시세 차익을 거머쥘 수 있었다.
■ 시타델, 헤지펀드 업계 최고 공룡의 돈 먹기
시타델은 2022년 한 해에만 무려 160억 달러라는 금융 역사상 단일 헤지펀드 기준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레이 달리오의 브릿지워터(Bridgewater)를 제치고 헤지 펀드 누적 수익 1위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타델은 운용자산(AUM)이 7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공룡이었지만, 최근 매년 시장 수익률을 압도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특히 2022년 글로벌 주가 대폭락, 최근 반도체 폭락 장세 등 경쟁자들이 파산하거나 빚(마진콜)에 쫓길 때 엄청난 현금으로 자산을 헐값에 쓸어 담아 큰 이익을 거두는 전법을 선보였다.
시타델은 다른 펀드들의 수급적 어려움을 기회로 활용하며 떼돈을 벌었다.
1990년 시타델을 설립한 켄 그리핀은 퀀트(Quant)와 멀티 스트래티지(Multi-Strategy) 투자의 선구자로 통한다.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초단타 매매(HFT)에 도가 튼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시타델의 시스템은 미국 주식 거래량의 20% 이상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월가 전체의 유동성 및 수급 흐름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금융 공룡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공룡이 최근 도박장으로 변한 한국 주식시장, 그리고 한국 시장의 주식을 활용해 큰돈을 먹으려던 젊은 헤지펀더의 위기를 활용해 큰 돈을 벌었다.
■ SA와 시타델, 그리고 향후 한국 주가는...
미국 투자자들 사이엔 7월 말~8월 초의 한국 주식의 반등과 관련해 시타델이 '폭탄의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수급 정상화에 따라 더 이상 무차별적인 매도 폭탄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시타델이 SA의 물량을 삼키면서 한국 주식시장의 수급 지옥이 끝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8월 들어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줄어들었다.
시타델은 마진콜에 몰린 펀드의 한국물을 헐값에 인수해 큰 돈을 벌었다.
이제 시타델이 얼마나 한국물을 보유할지, 언제 한국물을 팔면서 차익실현에 나설지가 관심사가 됐다.
SA의 4배 레버리지 청산이라는 수급적 폭락 요인이 사라져 한국 주식시장이 다시금 상승 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보인다. 하지만 시타델은 언제든 차익실현에 나설 수 있는 유리한 지위도 확보한 상태다.
장태민 기자 chang@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