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미·이란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로 106일간 사실상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됐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전략 요충지의 정상화는 국제 에너지 시장에 즉각적인 안도 신호를 보냈다. 국제유가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종전 선언 이면에는 핵 협상, 제재 해제 조건, 호르무즈 관할권이라는 세 가지 뇌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향후 60일간의 후속 협상이 진정한 승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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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왜 세계 경제의 급소인가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한 폭 54킬로미터의 좁은 수로다.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빠져나가는 사실상 유일한 출구로,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수역을 통과한다. 단순한 항로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병목이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해협이 봉쇄 국면에 접어들자 국제 에너지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선박 보험료가 급등하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돌파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아시아 주요 정유사들은 서둘러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서야 했으며, 미국산 원유(WTI)와 서아프리카산 원유 수출이 늘어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은 106일에 걸쳐 구조적으로 재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이제 완료됐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없는 전면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한다"며 "동시에 미국 해군의 해상 봉쇄를 즉시 해제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선박들이여, 엔진을 가동하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6월 14일 트루스소셜
협상 중재국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같은 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합의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샤리프 총리는 양측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공식 서명식이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열릴 예정임을 전했다. 이란 외무부도 이슬라마바드 양해각서 문안이 최종 확정됐음을 확인하고 "오늘 밤부터 미국의 해상 봉쇄 종료가 시작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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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직전의 위기 — 베이루트 공습이 흔들었던 협상
이번 합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MOU 서명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다히예를 공습하면서 협상 테이블이 흔들렸다. 이란의 종전 협상을 이끄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은 이스라엘의 공습이 "미국이 자국의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함을 다시 한번 명백히 보여준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협상 지속에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언론 인터뷰에서 "상황이 흔들렸고 서명이 몇 시간 지연됐다"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서명하기 불과 한 시간 전에 왜 공격을 감행했느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스라엘 변수는 이번 위기에서 봉합됐지만, 향후 60일 협상 기간 중에도 언제든 재발 가능한 지정학적 뇌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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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내용과 3대 미결 쟁점
이번 MOU의 큰 틀은 이란의 비핵화 이행과 미국의 단계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구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440킬로그램 규모의 60% 농축우라늄을 이란 내에서 희석한 후 국외로 반출하는 방안에 미국이 동의했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CBS 방송에 출연해 "이란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다시 전쟁부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며 합의 이행 강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를 '종전 협정'보다 '핵 협상을 위한 휴전 협정'에 가깝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 이유다.
세부 사항을 들여다보면 양국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깊다.
첫 번째 쟁점은 제재 해제의 시점과 조건이다. 이란의 반관영 메르 통신이 입수한 MOU 초안에는 240억 달러 규모의 동결 자산 해제가 포함되고 그 절반은 서명 즉시 풀린다는 내용이 담겼으나, 미국 측은 이를 "내부 강경파 설득용 선전"이라며 일축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란이 약속을 이행하기 전까지는 어떤 자금도 풀리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에는 돈이 오가지 않을 것"이라며 이행 성과 연동 원칙을 재확인했다.
두 번째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의 관할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행료 없는 전면 개방'을 선언했지만, 이란 외무부는 국제법상 연안국인 이란이 오만과 협력하여 해협 통항을 관리할 권한이 있음을 강조하며 통행료 부과의 정당성도 거두지 않았다. 이란 일부 매체들은 통행료 문제가 향후 협상 과정에서 본격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국 해협이 당장 물리적으로 열리더라도 운영 방식과 비용 구조는 향후 협상에서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재건 지원 규모다. 이란 측 MOU 초안에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3000억 달러(약 455조원) 규모의 이란 재건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국은 이 역시 이행 성과 연동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어 간극이 크다. 알자지라는 "양국이 종전을 위한 MOU와 최종 목표를 뒤섞어 자국민과 국제 사회를 설득하려는 의도"라며 "MOU는 단지 첫발일 뿐이며 복잡한 문제들은 이후 60일간 비로소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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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의 즉각적 효과는 이미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종전 합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까지 상승했고, 국제유가는 공급 차질 우려 해소와 함께 큰 폭으로 하락했다. 봉쇄 기간 동안 한국·일본·중국·인도 등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들이 장거리 우회 공급망 유지에 지출한 추가 물류비가 줄어드는 직접 효과도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낮아지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부담도 일부 경감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를 재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란산 원유 수출의 단계적 복귀가 공급 증가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만 이란의 실질적인 수출 재개는 제재 해제 조건이 충족된 이후로 늦춰질 수 있어, 유가의 급락보다는 점진적인 가격 조정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3000억 달러 규모의 이란 재건 지원 계획이 실현될 경우 중동 지역 인프라·에너지 부문에 대규모 투자가 유입되면서 중동 경제 지형 자체를 바꾸는 장기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한 안도 랠리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60일 협상의 성공적 마무리가 필수적이다.
협정 공식 서명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으로 협상이 일시 흔들렸던 만큼, 향후 60일 협상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헤그세스 장관의 '재전쟁' 경고에서 드러나듯 미국은 이란의 이행 여부에 따라 군사 옵션을 재가동할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남겨뒀다.
금융시장은 이제 '전쟁 종료'보다 '합의 이행' 여부에 더 주목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지속 가능한 평화의 경제적 수확은 아직 60일 뒤에 달려 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