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 지역에 공급하는 주력 원유 가격을 6년 만에 대폭 인하하며 다시 할인 판매에 나섰다. 미국·이란 휴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정상화되고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8월 인도분 아랍라이트(아랍 경질유) 공식판매가격(OSP)을 배럴당 11달러 인하했다. 이에 따라 아랍라이트 가격은 역내 기준유인 오만·두바이유 평균보다 배럴당 1.50달러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아랍라이트는 사우디 원유 수출의 핵심 유종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주요 정유사의 설비가 이에 맞춰 설계돼 있다. 이번 가격 조정으로 아시아 정유업체들의 원가 부담은 일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가 아랍라이트를 할인 판매한 것은 2015년 미국 셰일오일 증산에 대응한 가격 경쟁과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러시아와의 증산 경쟁 이후 세 번째다. 특히 이번 인하 폭은 2000년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큰 수준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실물 원유 시장의 공급 압력이 커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브렌트유는 중동 분쟁으로 형성됐던 '전쟁 프리미엄'을 대부분 반납했고, 실물 원유도 팬데믹 이후 보기 어려웠던 수준의 할인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회원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증산 합의에 따라 공급 물량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공급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아시아 구매자들은 사우디산 원유 가격이 인하 이후에도 역내 다른 산유국의 현물 가격보다 여전히 높다며 추가 가격 조정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유가도 공급 확대 기대를 반영하며 약세를 이어갔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8달러대, 브렌트유는 72달러 안팎에서 거래되며 중동 분쟁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제이 햇필드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사우디의 공식판매가격 인하는 통상 실물시장 가격 변화를 반영하는 성격이 강하다"며 "향후 한 달간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르네상스 에너지 어드바이저스의 아메드 메흐디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는 가격전쟁의 신호라기보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 따른 공급 증가를 가격에 반영한 것"이라며 "중국 등 아시아 수요를 유지하기 위한 경쟁력 확보 차원의 전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