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김경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을 성사시키며 중동 전쟁 종식을 선언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이번 합의가 이란 핵 문제 해결이라는 본래 목표에서 후퇴한 결과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 급등과 물가 상승, 정치적 부담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핵 프로그램 완전 폐기보다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에너지 시장 안정에 우선순위를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해 단순히 핵 프로그램을 협상하겠다는 이란의 약속만 받아들이고 있다"며 "주요 목표에서 물러서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WSJ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강경 정책을 지지해 왔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이스라엘이 요구한 농축 우라늄 제거 작전을 승인하지 않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무력으로 개방하는 방안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단지 고유가를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며 "이는 전략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전쟁 장기화 과정에서 미국 내 경제 부담은 빠르게 커졌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각각 수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전쟁 비용도 최대 500억달러(약 74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유가 급등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 점도 조기 종전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 역시 "트럼프는 축배를 들고 있지만 미국은 사실상 항복했다"며 이번 합의가 전략적 승리보다는 전쟁 지속이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비판론자들은 무엇보다 핵 문제를 후속 협상 과제로 넘긴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기간 내내 이란 핵 프로그램 완전 제거와 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언급했지만, 최종 합의에서는 핵 시설 폐기나 농축 우라늄 제거, 국제 사찰 수용 등 구체적인 조치가 포함되지 않은 채 향후 60일 협상으로 넘겨졌다.
WSJ는 "이란이 지금 핵 프로그램 해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원유 수출과 제재 완화 혜택을 받은 뒤에는 왜 그렇게 하겠느냐"며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이란의 말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늘 그렇게 말했지만 정반대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 역시 불씨를 남겼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협의 완전 개방과 통행료 면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란은 60일 유예기간 이후 사실상 통행 수수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알터먼 선임부소장은 "이란은 약화된 상태에서도 필요할 경우 언제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향후 60일간 진행될 후속 핵 협상이 이번 합의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협상 결과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를 뛰어넘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폐기했던 기존 합의보다도 후퇴한 결과를 얻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의회 내 강경파들도 견제에 나섰다. 공화당의 대표적 대이란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란과 체결되는 어떤 핵 합의도 반드시 의회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WSJ 역시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체결할 최종 합의안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며 "만약 그 합의가 여전히 '미국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는 정권을 지원하는 것이라면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경목 기자 kkm3416@newsk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