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투자자들은 유가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일각에선 다시 유가 '100불 시대'가 열릴 수 있다면서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으로 치닫기 어려워 유가가 세 자리수로 뛰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을 미국이 어느 선까지 지켜봐줄 지가 관건이다. 유가 흐름은 향후 전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달려 있다.
■ 급등한 유가...아직 100달러 이상 보는 것은 과도
지난 13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은 전장 대비 4.94달러(7.26%) 상승한 배럴당 72.98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7% 넘게 뛰면서 단숨에 70불을 넘어선 것이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따른 원유 공급 우려로 4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은 4.87달러(7.02%) 오른 74.23달러에 거래됐다.
유가 상방 압력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상당하지만 시장의 분석가들은 당장 세 자릿수 유가 등은 과하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국제유가가 단기 급등했지만 최근의 충분한 공급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이란 전쟁 효과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골드만삭스 등은 이번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공급 차질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기 위해선 전쟁 상황이 한층 더 심각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분석가들이 얘기하는 '한층 더 심각한 상황'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 걸프 해협 민간선박엔 대한 공격 △이란의 미군시설 공격 등을 말한다.
■ 이스라엘-이란 전쟁,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는 불안한 대치 상태 지속 속의 유가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유가 흐름을 달라질 수 있다.
양측이 전면전까지 가지는 않는 가운데 상당기간 불안한 대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예상이 많은 편이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확전과 봉합 사이의 위태로운 대치를 나타낼 가능성이 70% 정도로 가장 높다"면서 "이 상황에선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과 상호 파멸 공포 속에 추가적인 대규모 공습은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 연구원은 "이 경우 유가 상승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OPEC+는 2026년 9월까지 170만배럴/일의 단계적 증산은 예고한 상태"라며 "세계 산유국의 생산능력 대비 실제 생산 간 차이를 의미하는 생산여력은 현재 1,000만배럴/일에 육박해 유가 상승 시 탄력적 공급 확대가 가능한 구간"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은 하루 평균 세계 원유 공급의 3% 가량인 335만배럴을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은 2023년 3월 250만배럴 수준의 생산량을 중국에 대한 수출 확대를 통해 늘린 바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단기적인 국제유가의 ‘상방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주요국들의 개입이나 중동 외 석유 생산 확대 등으로 공급 차질 공포가 후퇴하면 국제유가의 상방 변동성도 점차 완화될 수 있다"면서 "단기 원유 투자는 '중립'적인 접근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란의 거칠어 보이는 전황에도 불구하고 확전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적이어서 유가가 100불을 넘을 것이란 전망 등은 자제하는 게 좋다는 평가도 보인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확전 가능성이 여전히 제한적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에 있다"면서 "이는 앞서 이스라엘-하마스전, 이스라엘-헤즈볼라전에서 동맹의 지원 요청에도 이란이 직접 개입을 꺼린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2024년 4월과 9~10월에도 이란 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면서도 확전은 지양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이란-헤즈볼라-하마스-후티 등 동맹 세력과 이스라엘-미국의 전력 차이가 커 이란이 큰 타격을 입고도 맘 먹고 덤비기는 쉽지 않다.
이란 주변엔 2개의 항모 전단을 지휘하는 미 해군 5함대 사령부와 B-52 폭격기가 소재한 5개의 공군 기지가 있다. 미군의 해군력 등을 감안할 때 이란이 무너진 '초승달 동맹' 등을 다시 정비해 제대로 보복하기도 쉽지는 않다.
최 연구원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확전이 아닌 소극적 보복이라면 유가를 비롯한 자산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지금 OPEC+는 사우디 주도로 증산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이란 충돌이 국지전에 머문다면 유가는 공급 영향에 따라 다시 박스권(55~75달러)으로 회귀할 것"이라며 "여전히 핵 협상을 원하는 미국 상황을 감안해야 하며, 과도한 불안은 지양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 만약 '호르무즈 봉쇄가 나타난다면'...유가 100불대 시나리오 현실화 가능성도
유가 급등 시나리오와 관련해 주목받는 곳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 남쪽에 위치한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해주는 해협으로 최소 전세계 원유 및 LNG 해상 물동량의 20% 이상이 이곳을 거쳐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 55km, 평균 수심은 56m이나 VLCC급 유조선이 항해할 수 있는 구간(수심25~30m)은 폭 3km 정도에 불과하며 그것도 이란 해역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해당 해역을 우회할 수 있는 시설은 사우디와 UAE가 유일하며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은 운송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봉쇄하거나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에 대한 공습으로 통제 불능의 전면전으로 치닫을 경우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이같은 워스트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20% 정도로 본다"고 했다.
하 연구원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설 경우 물동량 위축에 따른 단기 공급 충격이 우려된다. 현재 세계 원유 교역의 30%, LNG 교역의 20%가 호르무즈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면서 "1973년, 1979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례를 살펴보면 봉쇄에 따른 공급 차질이 단기적으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현재도 우회 공급로는 제한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파이프라인을 통한 원유 수송은 대략 250만배럴/일, UAE는 150만배럴/일로 단기적으로 1,600만배럴/일 공급 충격이 발생한다.
하 연구원은 따라서 "워스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국제유가(WTI 기준)가 배럴당 120달러를 상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속에 채권과 주식시장 모두 동반 약세를 나타날 것"이라며 "특히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지역에 타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세계 석유 공급의 1/3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등 중동산 공급 차질을 둘러싼 공포가 확산될 경우 단기적으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뿐만 아니라 100달러까지 돌파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 이스라엘-이란 전쟁, 강대국들의 훈수...그리고 G7 회의
지난 주말 이란은 조건부 보복 중단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참에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 양국이 협상의 실마리를 찾기는 어려워 보였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5일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격으로 이란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 이란 내 현존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발언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선 결국 미국의 의지가 중요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SNS를 통해 "평화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적기도 했으나, G7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서는 "휴전이 타결되기를 희망하나 때로는 서로 싸워서 해결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트럼프는 또 "이란이 만약 미국을 공격할 경우 이전에 보지 못한 미군의 강력한 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5~17일 캐나다에선 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서방 7개국 회의에선 이스라엘-이란 분쟁 문제를 다룰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현재 서방이 이스라엘 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들도 보인다.
영국 재무장관은 15일 이스라엘에 전투기 지원이 가능하기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영국군 기지 보호 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외교장관은 이란의 핵프그램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유럽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밝혀 이스라엘 측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 메르츠 총리도 15일 "G7 정상회의에서 중동 긴장 완화와 이란의 핵 프로그램 보유에 대한 반대 등에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 튀르키예 등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자신들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는 이번 일을 중재하는 데 있어서 신뢰가 부족하다는 반론을 펼쳤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자체적으로 휴전 돌파구를 마련하기 하기 쉽지 않은 가운데 미국의 움직임, 그리고 G7 등 주요국 움직임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