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콤 장태민 기자]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 신용등급을 디폴트 직전으로 내린 가운데 조만간 '기술적' 디폴트가 일어날 것이란 예상이 강화됐다.
무디스는 현지시간 6일 러시아의 디폴트, 즉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감안하면서 신용등급을 Ca로 내렸다.
Ca는 일부 디폴트에 해당하는 C 바로 위 등급이지만, 무디스는 신용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S&P는 러시아 신용등급을 CCC-로 강등하면서 디폴트 임박 가능성을 제시한 상태다.
글로벌 신평사들은 등급 하향 조정과 함께 전망에 대해서 Negative를 부여한 상태다. 일단 다가오는 달러 국채 상환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관심이다.
■ 서방의 금융제재와 러시아의 자본 통제...이달 중순 달러이자 지급 놓고 디폴트 우려
당장 러시아가 달러로 발행한 국채 이자가 지급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오는 16일 1.2억달러 규모의 달러 이자가 상환될 수 있을지 일단 이목을 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루블화 국채(OFZ)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3일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자가 지급되지 않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6,300억불에 달해 신흥국 중 2위에 달할 정도로 달러는 풍족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 가용규모는 300억불 수준이라고 보도되는 등 상황이 만만치 않다.
특히 러시아는 서망의 긍융제제 조치로 인해 SWIFT망에서 축출됐으며, 국채 거래가 중단된 상황을 맞았다.
지난 1998년처럼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이 재차 현실화되면서 금융시장에 큰 파장이 일어나지 않을지 우려도 적지 않다. 투자자들이 돈을 받아가기 힘든 구조 때문에 이자 상환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를 놓고도 논란이 있다.
주혜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러시아 정부가 국채 이자를 상환하더라도 각종 제재 등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반출이 불가할 경우 기술적 디폴트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러시아 재무부가 국채에 대한 이자를 제때 지급했으나 채권자들이 계좌에서 그 이자를 역외로 이체하거나 반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것이 디폴트에 해당되는지 여부 역시 채권, 법률 전문가들에게도 아직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레이스 피리어드, 즉 유예기간의 경우 외화채는 15~30일, OFZ는 10일이 부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급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러시아 디폴트는 4월 중순에 찾아올 수 있다.
아무튼 서방의 러시아 금융제재, 그에 맞서는 러시아의 광범위한 자본통제 속에 러시아 채권의 기술적 디폴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 5일 러시아 정부는 외화로 발행된 국채 및 회사채를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법령(decree)을 긴급 발표하기도 했다. 가치가 크게 떨어진 루블화를 통한 상환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도 논란 거리다. 아무튼 달러로 상환하지 않으면 일단 디폴트에 걸린다고 볼 수 있다.
■ 과거 디폴트 사례 감안해 러시아 디폴트 여파 주시
러시아 정부가 달러, 유로로 발행한 외화 국채의 총 잔액은 400억 달러 수준으로 외국인 비중이 절반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외화로 발행한 회사채 규모까지 합치면 2,500억불이 약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CDS 프리미엄은 400~500bp대에서 단숨에 1,600bp대로 급등하며 크림반도 분쟁 제재시의 600bp, 금융위기시의 고점 1,100bp 수준을 상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블화는 달러당 130루블로 뛰면서 최대폭의 약세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러시아가 채무 일부를 상환하지 못하는 SD(Selective Default, 선택적 디폴트)를 포함한 최근 주요 디폴트 사례는 2017년 베네수엘라, 2015년 우크라이나, 2014년 아르헨티나, 2012년 그리스 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B-에서 SD로 강등 기간은 7개월에서 2년 이상이 소요되기도 하고, SD에서 디폴트 선언까지는 바로 되거나 그리스의 경우 약 3년이 걸리는 등 제각각이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또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겪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LTCM 파산 등이 겹쳐 궁지에 몰린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1997년~1998년 주요 수출품인 유가 급락에 따른 경기침체, 외환보유액 고갈 등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는 평가다.
김 연구원은 "과거 모라토리엄 당시 GDP대비 144%였던 정부부채는 현재 20%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건전성은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당시엔 IMF 차관 같은 서방의 지원이 있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 "LTCM 역시 파생상품과 관련이 있어 현재 유사한 사례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멕시코 데킬라 위기, 태국과 한국의 외환위기는 당시 연준의 금리인상 영향을 받았으며, 지금 이와 유사한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풍족해 보였으나 서방의 제재에 걸려 '가용' 달러는 사실상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 스프레드는 러시아가 위험에 직면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김 연구원은 "EMBI(Emerging Market Bond Index) 스프레드는 440bp 수준으로 상승해 금융위기 이후 주요 이벤트시 상단이었던 400bp 후반대에 접근 중이어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브라질 등 원자재 관련 국가들의 채권가격과 통화가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양상을 보이는 등 신흥국 내에서도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 전쟁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디폴트 위험...리스크 과장하지 말자는 견해도
지난 1998년 러시아의 위기는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의 금융위기 연장선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서방의 금융제재로 인해 '기술적' 디폴트가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경제 체력도 그 당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러시아의 지속적인 전쟁 수행에 따른 건전성 악화도 이어질 수 있다.
아무튼 러시아 디폴트의 파장보다는 경기침체 가능성 측면에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낫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1998년 위기 당시 브렌트유는 배럴당 10달러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배럴당 130달러에 이르고 있다"면서 "그 때와 지금 모두 부채 위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지불 능력과 경제 체력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은 부실보다 유동성 회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예고된 혹은 의도된 자본 통제에 따른 지불불능을 금융시장이 어떻게 해석을 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면서 "주요국 연기금 및 금융기관에서 러시아 주식·채권에 투자한 경우 해당 자금을 즉각적인 부실자산으로 분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3월 중순 혹은 4월 중순 위기론은 러시아 외화 국채의 첫 이자지급일을 염두에 둔 접근이다. 주요 러시아 채권 투자자인 알리안츠, 피델리티,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이 추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이 연구원은 "러시아 채권 익스포져가 가장 큰 알리안츠의 주가 하락세가 좀 더 두드러질 뿐 금융기관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안을 체크해야겠지만 당장 '러시아 디폴트 = 금융기관 부실' 우려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 원자재 폭등...러시아 폭주 막을 수 있는 주체는 중국 뿐?
금융시장이 러시아 디폴트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결국 누군가 나서서 현재 갈등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은 모두에게 좋지 않다.
결국 인플레, 경제성장 등 모든 차원에서 원자재 안정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평가가 많다.
러-우 전쟁으로 인해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람들은 1970년대 중반의 오일쇼크, 198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사건 등을 떠올리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어디까지 뛰어오를지 예단하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WTI를 120불 수준까지 쳐올린 상황에서 누군가 나서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원유의 백워데이션 심화 등을 감안할 때 상황이 해결의 기미를 찾을 때 유가가 빠른 속도로 안정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당장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 해결사로 나설 수 있는 주체는 중국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제시된다.
유명 이코노미스트였던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질주를 막을 유일한 인물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라며 "현 상황을 어떻게 전개해 갈 지는 그의 손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사실 러시아와 서방과의 거래선이 끊긴 상황에서 중국의 역할론이 부상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강했다.
로치는 "만약 푸틴이 국제사회에 동조하지 않으면 중국은 러시아와 단절할 것이라는 위협을 해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데 중국이 러시아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한다면 이건 실수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